역사와 현실

실학자 정약용의 ‘페이크 뉴스’

경향신문 2019. 6. 27. 10:48

실학자 정약용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이었다. 세월의 장벽을 넘어, 그가 쓴 글은 오늘날에도 진가를 인정받는다. <목민심서>도 그러하고 <여유당전서>에 실린 논설이나 전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실학자가 쓴 글이라도 무조건 믿고 따를 수는 없다.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쓴 글도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글을 쓰는 경우조차 배제할 수 없다.


정약용의 시문집을 읽다가 글쓴이의 진의가 아리송한 글을 만나기도 한다. 알다시피 그의 형제들, 평소 친했던 선비들 중에는 천주교를 믿었대서 희생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문제는 정약용이 그들의 전기를 쓰면서, 해당자가 천주교와는 애초 거리가 멀었다고 주장한 경우이다. 그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고 쓴 것일까? 아니면, 요샛말로 ‘페이크 뉴스’를 생산한 것인가?


그때 녹암 권철신이란 이가 있었다. 그는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수업했는데, 자신의 선배 순암 안정복과 더불어 스승의 학통을 계승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의 조선사회는 천주교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1784년 안정복이 권철신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권철신은 이미 천주교를 믿고 있었다. 그는 훗날 신유박해가 일어나 관헌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다가 목숨을 잃는다(1801). 이런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기 무려 17년 전, 안정복은 후배에게 편지를 보내 다가올 위험을 경고했다(안정복, &lt;순암선생문집&gt; 제6권, ‘권기명에게 답함’)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일전에 두 번이나 편지를 보내 내 생각을 말했지 않은가. 내가 물어본 일에 대해서 자네가 답을 회피했는데, 너무 바쁜 탓이겠거니 짐작하네. 선배인 나로서는 정말 걱정이 되어, 다시 한 번 말하는 것이라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자네가 천주교에 빠져 철없는 젊은 선비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고 하네. 요즘 세상에서 자네야말로 성호학파의 기대주가 아닌가. 장차 후배들을 이끌어 나갈 선비라면 다들 자네를 손꼽는다네. 그런데 어찌하여 천주학에 빠진다는 말인가?


아무개와 아무개가 모여서 천주교를 공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네.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이들은 그대의 절친한 벗, 아니면 그대의 제자들이라네. 그대는 이런 풍조를 앞장서서 청산해야 할 사람인데, 어쩌다가 도리어 그 앞잡이가 되었는가.


자네도 나도 잘 아는 어느 선비가 내게 찾아와서 걱정을 털어놓기에, 결코 그럴 리가 없다고 야단쳐서 돌려보냈네. 그러나 자네 집안사람들에게서 듣고 하는 말인 줄을 내가 모르겠는가? 이 편지를 이기양에게도 보여주기 바라네. 읽은 다음에는 반드시 불태워 없애라는 말도 함께 전해 주게.


안정복의 편지는 성호학파 내부에서만 열람될 일종의 비밀서한이었다. 이기양은 권철신의 제자이자 사돈이었다. 편지에서 안정복은 자신의 후배 권철신과 이기양이 천주교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사실을 나무라며, 학파의 장래를 깊이 걱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선배의 충고를 따르지 못했다. 권철신과 이기양은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온갖 고난을 겪었다. 권철신은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옥중에서 사망했다. 이기양은 북쪽 변방으로 유배되어 수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두 사람을 신앙의 선조로 여긴다.


정약용의 견해는 완전히 달랐다. 훗날 그는 죽은 권철신과 이기양을 위해 장문의 전기를 서술했다. 정약용은 글에서 주장하기를, 어느 모로 보든 그들은 결코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정약용이 쓴 글들은 &lt;다산시문집&gt; 제15권에 실려 있다(‘녹암 권철신 묘지명’과 ‘복암 이기양 묘지명’).


우선 권철신에 관한 정약용의 주장은 이랬다. 천주교를 널리 전파한 것으로 이름난 이벽이 권철신을 찾아갔다. 그는 10여일을 묵었으나 선교에는 실패했다. 권철신의 동생으로 안정복의 사위였던 권일신만 천주교에 빠져들었다. 정약용은 권철신이 일생 동안 오직 주희를 받들고 존경했다고 주장했다. 권철신이 “나만큼 주자를 깊이 존경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기술했다.


이기양 역시 억울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평생 천주교 서적을 한 글자도 본 일이 없었으나, 혼인관계로 연루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정약용의 주장이 옳다면, 권철신은 순수한 성리학자일 뿐 천주교와는 무관하다. 이기양도 천주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성호학파의 어른 안정복이 보낸 편지에 따르면 사실관계는 정반대였다. 세상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 그러했다.


정약용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대학자가 장황한 글로 후세를 속이려 한 것이다. 한번 천주교 신자라는 먹물이 몸에 튀는 날이면 그것으로 끝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벼슬길에서 아득히 멀어져 폐족이 된다. 그래서 정약용은 천연덕스럽게 거짓 뉴스를 생산한 것이었다.


정약용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당당하지 못했던 그의 태도가 내 마음에 걸린다. 만약에 모두가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려든다면 세상에 희망은 사라지고 만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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