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아전인수식 선거 분석

경향신문 2021. 4. 29. 10:3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결과를 놓고 아직도 말이 많다. 결과야 일찌감치 나왔지만 원인 분석이 제각각이라 그렇다. 데이터 분석에서 무엇보다 주의할 점은 정해놓은 결론에 끼워맞추는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만큼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텍스트 해석과 데이터 분석에 종사하는 연구자로서 분석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선거 결과로 주어진 데이터는 총 득표율과 지역별 득표율, 그리고 성별·연령별 득표율이다. 우선 총 득표율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야당의 총 득표율은 여당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야당이 전 지역에서 승리했으니 지역별 득표율은 무의미하다. 쟁점은 성별·연령별 득표율이다. 이른바 ‘이대남’과 ‘이대녀’의 표심이 극명하게 갈렸다. 해석이 갈리는 것도 이 부분이다.

 

이대녀 15%의 군소후보 지지는 이례적이지만 확대 해석하면 곤란하다. 전체 유권자의 1% 수준이다. 유권자는 대의가 아닌 이익에 투표한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이대녀 15%는 페미니스트 후보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페미니스트 후보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남성 유권자는 그렇다치고 다른 연령층 여성 유권자의 지지조차 시원찮다. 이대녀 15%만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면 모르거니와, 보다 넓은 지지를 확보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대남의 압도적인 야당 지지를 반페미니즘으로 간주하는 것도 성급한 해석이다. 이대남의 군소후보 지지율은 5.2%로 이대녀(15.1%)와 삼대녀(5.7%)에 이어 세 번째다. 이대녀의 군소후보 지지율이 성평등 의식의 산물이라면, 이대남의 그것에도 같은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대남의 야당 지지는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현 정부의 실정, 고용문제나 주거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남녀별·세대별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별 대결로 속단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여당은 패배의 일차적 원인으로 ‘LH 사태’를 지목하지만 핑계일 뿐이다. ‘예전 정권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라고 생각한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개혁이 미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납득하기 어렵다. 설마 유권자들이 ‘역시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의 적임자는 보수야당이지’ 하는 생각으로 야당을 찍었을까. 여당의 아전인수식 선거 결과 분석은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반사이익으로 얻은 승리를 지지로 착각하는 야당도 아전인수이기는 마찬가지다. 전직 대통령 사면을 제기하자마자 추락하는 지지율이 그 증거다.

 

군소후보들도 아전인수식 해석에서 예외가 아니다. 허경영 후보는 자기 득표율이 최소 10%는 넘었을 것이라며 증거보전을 신청했다.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현실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이다. 어디 허 후보만 그렇겠는가. 이대녀 15%의 지지에 한껏 고무되어 있지만, 나머지 군소후보들의 득표율은 1% 미만이다. 지지를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성평등을 내세운 군소후보 5명의 득표율을 합치면 1.9%에 이른다고 자위하는 견해도 있는 모양인데, 이들이 말하는 성평등은 같지 않다. 걸핏하면 ‘연대’를 말하는 후보들이 정작 자기들끼리는 연대하지 못한 이유가 이것이다. 양당 구도의 한계만 탓할 수도 없다. 유권자는 후보가 내세우는 가치만으로 후보를 평가하지 않는다. 출마 목적이 광고가 아닌 당선이라면 그 가치를 실현할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애당초 이번 선거는 “후보를 내서 심판을 받는 것이 공당의 도리”라는 아전인수식 논리에서 시작되었다. 여당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 무공천 약속을 뒤집었다. 유권자들은 탐욕에 투표하지 말고 정의에 투표하라는 누군가의 말을 충실히 실천했다. 야당이 정의라는 말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탐욕에 투표하지 않음으로써 정의를 실천했다. 이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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