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얼마나 일해야 충분할까

경향신문 2020. 1. 16. 17:11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40시간의 법정근로+12시간의 연장근로)를 도입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 정책이 경제를 파탄 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보수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며 쓴 기사들의 표제들이다. “저녁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 살 돈이 중요 ~ 일 더하게 해주세요” “1년 뒤에 공장 문 닫을 판” “주 52시간 포비아에 떠는 2.4만개 기업” “지킬 수 없고 지켜도 행복하지 않은 주 52시간”.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고 대한민국은 좀 더 일해야 하는 나라라고 이야기하는 보수 정치인들도 있었다. 2019년에는 50인 이상~299인 이하의 중소기업에는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 중소기업이 망했다는 허위에 가까운 과장된 기사들까지 등장했다.


프랑스에서도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1998년 프랑스에서 문제가 된 것이 ‘주 35시간’이었다. 물론 당시 프랑스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노사 간의 협의와 법안의 수정 보완으로 주 35시간은 안정적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프랑스의 주 35시간 노동제가 무모한 개혁 중 하나였고 가장 어리석은 조치였다고 주장하는 일부 해외 보수언론들을 인용하면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경제를 망치는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일해야 충분할까? 16세기 영국인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이상적인 노동시간을 제시했다. <유토피아>에서는 하루에 여섯 시간만 노동에 할애한다.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 식사 후에는 두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세 시간 노동한다. 이는 주당 30시간 일하는 것이다. 하루에 단지 여섯 시간밖에 일하지 않으면 필수품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토머스 모어는 그 노동시간만으로도 생활필수품뿐 아니라 편의품까지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 방법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16세기 토머스 모어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19세기 산업혁명기 영국에서 노동자들은 연간 3588시간이라는 살인적 노동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장시간의 노동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들이 19세기 유럽 국가들에서 일기 시작했다. 19세기 중엽 영국은 처음으로 8~12세는 하루 10시간의 노동을, 13~16세는 12시간의 노동을 법으로 규정했다. 1919년에는 프랑스가 주 40시간 근로제도를 도입했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노동시간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1930년에 쓴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글에서 100년 후 경제가 8배로 성장하고, 생활수준은 4~8배로 개선되고 노동시간은 15시간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하루에 3시간만 일하게 되는 것이다. 케인스가 예상했던 만큼 노동시간은 단축되지 않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노동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여왔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우리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2017년 OECD 국가 연평균 노동시간 멕시코 2258시간, 대한민국 2024시간, 프랑스 1526시간, 독일 1356시간). 이 자료가 보여주듯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과로사의 의미를 알 정도로 우리는 이미 과도하게 일하고 있다. 


2019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 이상이 주 52시간 제도를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들은 52시간제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이 대한민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고 이를 폐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경제가 영원히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들 언론이 목표하는 것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승부하는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모델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 52시간 노동에 대한 과도한 공격과 왜곡은 멈춰야 할 것이다. 긴 역사의 흐름을 기준으로 보면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도덕적 진보이고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당위적인 길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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