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저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자기소개서에 넣으면 반드시 떨어진다는 마법의 문장이다. 인사담당자의 눈에는 진부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모양이다. 물론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는 죄가 없다. 아무렴 기업이 주정뱅이 아버지와 바람둥이 어머니 밑에서 자란 지원자를 선호하겠는가. “우리집은 어려서부터 가난했었고”로 시작하는 신파극형 자소서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다.

인사담당자는 바쁘다. 성의 없는 자소서를 찬찬히 검토할 여유가 없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점철된 자소서를 보면 표절부터 의심한다. 그리고 기업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자소서의 트렌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지원자를 어디에 쓰겠는가. 그러므로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로 시작하는 자소서는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이른바 ‘엄부자모’는 7세기경 편찬된 <진서>에 처음 보인다. 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과 어머니의 자상한 보살핌을 강조한 문헌은 수없이 많지만, 반대의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아버지는 자상해야 한다.”(<대학>) “아버지는 자상하고 아들은 효도한다.”(<예기>) 자상함은 아버지의 미덕이다. “부모는 엄격한 군주와 같다.”(<주역>) “엄격한 어머니에게서 효녀가 나온다.”(<명심보감>) 엄격함은 어머니의 자질이다. 엄격함과 자상함은 자녀 교육을 위한 채찍과 당근이며, 부모 중 어느 한쪽만의 덕목은 아니다. 따라서 엄부자모는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와 어머니’로 해석해야 한다.

이런 구조의 고사성어는 한둘이 아니다. 명산대천은 ‘유명한 산과 거대한 강’이 아니라 ‘유명하고 거대한 산과 강’을 말한다. 동분서주, 천신만고, 풍비박산, 모두 같은 구조다. 전문용어로는 호문(互文)이라고 한다. 앞뒤의 구가 교차하며 의미를 이루는 문장이다. 엄부자모 역시 호문이다. 단지 성역할을 구분하는 고정관념 탓에 엄격함을 아버지의 전유물로, 자상함을 어머니의 전유물로 오해한 것뿐이다.

한술 더 떠 엄격함과 자상함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체어로 자리 잡았다. 편부 슬하는 ‘엄시하(嚴侍下)’, 편모 슬하는 ‘자시하(慈侍下)’라고 말한다. 여기서 ‘엄’과 ‘자’는 그 자체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의미한다. 아버지는 엄격하지 않아도 엄부이고, 어머니는 자상하지 않아도 자모이다. 결국 엄부자모 밑에서 자랐다는 말은 이른바 ‘정상가족’에서 자랐다는 뜻이다.

친·인척 간 교류가 활발한 전통적 대가족 제도에서는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많다. 어느 한쪽이 없어도 심각한 결핍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만으로 구성된 핵가족은 다르다. 하나라도 없으면 타격이 크다. 학교든 군대든 회사든 구성원의 가족관계를 들여다보려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정상가족’ 출신이 아니면 어디서나 요주의 인물이다. 아닌 척해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엄부자모가 상투적 표현으로 전락한 이유는 그것이 한동안 잘 먹혀서 그렇다. ‘정상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사실만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달라졌다지만 우리 사회는 엄부자모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장과정은 왜 물어보며, 가족관계증명서는 왜 내라고 하는가. 불행한 가정사를 극복한 성공 스토리조차 편견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불행한 가정사는 자기소개서에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취업준비생의 불문율이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여도 속은 곪아터진 가정도 있고, 불우한 가정에서 반듯하게 성장한 사람도 있다. 가정의 형태는 갈수록 다양화하고 있지만 편견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인격 형성에 가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관념은 견고하고, 부모의 사회적 위상과 가정 환경으로 사람을 가늠하는 풍조도 그대로다. 걸핏하면 정치인의 발목을 잡는 것도 가족 문제다. 가는 곳마다 가족관계를 묻는 사회에서 정치인만 예외일 수는 없다. 복잡한 가족 문제를 사생활로 치부하고 쿨하게 넘어가는 시대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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