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잃어버린 땅, 녹둔도

경향신문 2019. 12. 10. 13:42

‘조산(造山)의 요충지 녹둔도(鹿屯島)에 농민들이 흩어져 사는데, 골간(骨看·여진족) 등이 배를 타고 몰래 들어와 약탈할까 염려된다. 진장이나 만호에게 단단히 방어할 수 있도록 하라.’(<세조실록>)


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로 부임하는 양정(楊汀)을 경복궁 사정전으로 불러 이렇게 당부했다. 세종이 6진을 개척해 영토를 두만강까지 넓혔다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확장보다 더 어려운 게 수비였다. 6진의 행정체계가 완성된 뒤에도 여진족의 약탈은 계속됐다.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가 특히 심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녹둔도 기록은 대부분 여진족의 침략 이야기다. 


이순신은 부친 삼년상을 마친 1586년 경흥의 조산 만호로 관직에 복귀한다. 이듬해 조산에서 십리 떨어진 녹둔도의 둔전 경영 임무까지 겸했다. 국경과 인접한 외딴섬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많은 병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순신의 증병 요청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해 8월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 조선 병사 6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 중과부적이었다. 다행히 이순신이 즉각 반격에 나서 포로를 구출했다. 이후 이순신은 녹둔도 방어에 진력했다.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의 전승 기록은 <선조실록>과 <징비록>에 나온다. 함경북도 조산에는 승전대비가 건립됐다. 이순신의 이름을 처음 세상에 알린 것은 임진왜란이 아닌 녹둔도 전투였다. 


녹둔도는 섬이었으나 상류의 토사가 쌓이면서 18세기 이후에는 육지로 연결됐다. 섬이 늪지로 바뀌면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떠나갔다. 조선의 관심이 멀어져 가던 때, 청나라는 몰래 녹둔도를 러시아에 넘겼다. 1860년 베이징조약 이후 녹둔도는 줄곧 ‘잃어버린 땅’이었다. 조·러 수호조약 이후 조선은 몇차례 녹둔도 반환을 요청했으나 허사였다. 1990년 9월, 북한은 아예 국경조약을 통해 러시아 영토임을 인정했다. 그래도 일제강점기까지 녹둔도의 주인은 조선사람이었다. 내년 봄 남북한, 러시아가 공동으로 녹둔도 유적 발굴조사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잃어버린 우리 땅’이라고 자조할 것은 없다. 이순신의 역사 유적을 발굴하고, 나아가 ‘동북아 평화만들기’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