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조선도공 후예 심수관

경향신문 2019. 6. 18. 13:57

임진왜란·정유재란의 7년전쟁에서 끌려간 조선인은 5만~10만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도공, 석공, 목공, 인쇄공, 제지공 등 기술자나 기능인이 유독 많다.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했다. 도공은 일본군의 표적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인 도공을 납치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다. 일본이 ‘조선 도공 모시기’에 열을 올린 것은 당시 일본에 다도가 유행하면서 질 좋은 다기와 다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구태훈, ‘일본에서 꽃핀 조선의 도자기 문화’).


피랍된 조선 도공 가운데 널리 알려진 이는 이삼평(李參平)이다. 1598년 사가현으로 끌려간 이삼평은 아리타(有田)의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백토(고령토)를 발견한 뒤, 그곳에서 조선식 자기를 제작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히젠 도자기’의 시작이다. 이후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몰려들면서 아리타는 일본 도자기의 본산지가 됐다. 이삼평은 ‘일본의 도조(陶祖)’로 추앙받고 있다. 아리타에는 이삼평기념비와 ‘도공의 신’ 이삼평을 모신 이시바 신사가 있다. 


심수관(沈壽官) 역시 일본 내 대표적 ‘조선 도공’이다. 정유재란 때 납치된 심수관 가문의 시조 심당길은 일본 가고시마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제작했다. 3대 심도길에 이르러서는 지역 도자기 제작 책임을 맡을 만큼 기술을 인정받았다. 6대, 7대, 8대는 모두 사쓰마번 도공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 12대 심수관에 이르러 개인 가마 ‘심수관요’를 제작해 ‘사쓰마 도자기’를 탄생시켰다. ‘심수관’이 국제적 명성을 얻으면서 13대부터는 본명 대신 선대 이름을 이어쓰고 있다. 13대 심수관은 가고시마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한때 명맥이 끊겼던 이삼평 가문에 비해 심수관 가문은 400년 이상 한 세대도 끊어지지 않고 도자기를 빚고 있는 ‘조선 도공의 명가’다. 


16일 14대 심수관씨가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선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투조, 유리세공 등의 새로운 기법을 시도한 심씨는 도공으로서는 드물게 대한민국 총영사로도 일했다. 400년 전 조선의 도예로 일본 한류를 열었던 심수관가는 이제 한·일 문화교류의 상징이다. 선대 도공의 맥을 잇고 있는 15대 심수관씨의 더 큰 활약이 기대된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