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역사가 위안이 될까

경향신문 2021. 10. 7. 09:46

2020년 1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 이 상황이 이렇게나 오래도록, 그것도 다양하게 악화되며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이 많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피해가 덜하다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생각해보면 객관적 환경만으로는 한국이 전염병 차단에 결코 유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수입과 수출이 많은 나라이니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고, 인구밀집도가 매우 높다. 불리한 조건에도 이 정도 방역이 가능한 것은 개인의 희생을 포함한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사적 노력으로 방역에 성과를 거두었지만 공짜일 리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경제적 피해를 보았고, 우리는 모두 심리적 위축이나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 예전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도 이제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정도 차이는 있어도 적어도 수년간 이 상태가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어느덧 우리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대하는 우리 태도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생애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때, 우리는 역사를 돌아본다. 조선은 건국 당시부터 전염병에 대한 정부 대응을 법전에 규정했다. <조선경국전>(1394), <경제육전>(1397)과 <속육전>(1413)에 실린 전염병 관련 규정은 <경국대전>(1476)에 종합 정리되었다. 그에 따르면 어떤 지역에 전염병이 돌면 중앙정부는 먼저 의관(醫官)을 파견하고, 약재(藥材)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구휼(救恤)’을 실시했다. 구휼은 전염병으로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생계 물자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도 전염병이 돌면 전염병에 죽는 사람만큼이나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 다친 사람은 옆 사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전염병이 걸렸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한 가족의 가장이 전염병에 걸리면 가족은 아사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정부는 이를 잘 알았다.

 

<경국대전>은 전염병이 돌면 신분에 상관없이 지역 관청에서 약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백성의 의료권은 태조 원년(1392), 즉 조선 건국 당시부터 법제적으로 보장되었다. 또 정부는 전염병으로 사망한 시체를 반드시 매장하도록 했다. 이는 병원체 전파를 차단해 전염병 억제에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경국대전>의 전염병 대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정부가 ‘여제’를 지냈다는 것이다. 전염병을 가져왔다고 여겨지는 ‘여귀’를 달래는 제사이다. 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했다. 유교만큼 신비주의를 배격하는 사상도 드물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여제를 지내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선의 위정자들과 지식인들은 여제가 전염병 확산을 막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그렇게 믿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파스퇴르가 전염병이 세균 작용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은 19세기다. 하지만 조선 정부가 여제를 지낸 목적은 전염병 차단보다는 다른 목적 때문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이 믿는 방식으로 백성들을 위로했다. 조선 정부의 전염병 대응책은 <경국대전>에 있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정부의 대응에도 전염병 확산을 막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 정부는 죄수를 석방하고 세금을 깎아주었다.

 

현대 의학 수준을 전근대와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전염병 확산을 통제하지 못하고 전염병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름이 없다. 의학의 획기적 발전조차 우리 삶을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조선은 그 당시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전염병과 싸웠다. 의학만이 싸움의 도구는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그 상황을 이겨내곤 했다. 지금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처럼 결국 우리도 이 상황을 통과할 것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