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역사교육, 다시 ‘우물 안 개구리’로 유턴?

교육부가 2012년부터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쳐 온 교과목 <동아시아사>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동양사학회와 일본사학회를 비롯한 관련학계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동아시아사>는 주로 한·중·일 3국의 역사를 비교사의 시각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교과목 창설 당시 국제적으로도 호평을 얻은 바 있다. 한국고대사 연구로 저명한 와세다 대학의 이성시(李成市) 교수가 사석에서 ‘한국이 아니고서는 단행할 수 없는 역사교육의 큰 변화’라고 놀라움을 표시한 걸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이전 역사교육은 주로 <국사>와 <세계사>의 틀에서 진행돼 왔는데, <세계사>의 주안점은 서구의 역사였다. 그 결과 한국학생과 시민은 영국사나 프랑스사는 대강이나마 알아도 이웃나라인 중국사나 일본사는 낯설어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되었다. 해방 후 ‘서양만 알아도 되는’ 시기에는 그랬다 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존재감이 점점 커져 가는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동아시아사>의 탄생은 그런 시대적 흐름에서 나온 것일 터다. <동아시아사>는 이 지역의 역사가 얼마나 상호 밀접한 영향하에서 만들어져 왔는가를 강조하며, 자국사에만 매몰된 우물 안 개구리식 역사인식에 경종을 울려왔다. 또 한국사의 현상을 중국, 일본 등과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경험을 늘 상대화하여 생각하게 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그런데 <세계사> 교육도 한참 약화되어 버린 상황에서 <동아시아사>마저도 퇴출시킨다고 하다니, <동아시아사> 교과목 탄생의 배경이었던 동아시아 지역의 부상이라는 시대적 흐름이 지금은 바뀌었나? 바뀌기는커녕 중국은 미국과 맞짱 뜨는 나라로 커버렸고, 일본은 공세적 민족주의 국가로 변해가고 있다. <동아시아사 Ⅱ>를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어째 거꾸로 가나?

 

극단적으로 말해 중국과 일본의 역사는 동아시아의 틀을 통하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강대국들 사이에 있는 한국사는 이 지역 전체의 역사를 시야에 넣지 않고서는 제대로 설명해 내기 어렵다. ‘역사의 국제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도 우리가 국제적 대립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은 북핵 사태나, 미·중대립 속 우리의 난처한 입장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처지에 있는 나라가 <동아시아사>를 폐지한다니?

 

위에서 ‘한국사’라는 말을 썼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국사’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는 것은 ‘역사의 국제 감각’이란 면에서 심상치 않다. 사실 ‘국사(國史)’라는 말은 메이지시대 일본에서 탄생한 말이다(‘국어’도 마찬가지). 강렬했던 일본민족주의의 산물이다. ‘일본사’라고 해도 될 것을 ‘국사’라는 호칭으로 특별취급을 하는 바람에, 자국 역사를 타국 역사와 합리적으로 비교하고, 자국을 세계 속에서 상대화하는 일본인의 역사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메이지시대 이후 ‘국사’의 특권화로 많은 일본인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상을 구축했고, 국제사회의 실상을 오판했다. 그 폐해는 현재의 일본사회에까지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영국사> <프랑스사>가 있을 뿐 ‘국사’는 없다. 그걸 자각하고 일본은 몇 년 전부터 ‘국사’라는 말을 회피해서 ‘일본사’라는 말이 거의 정착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역시 일본말인 ‘국민학교’가 늦게나마 ‘초등학교’로 바뀐 데 비해 ‘국사’라는 말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최근에 ‘한국사’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게 되었지만, ‘국사’의 위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 말의 연원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한국시민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세계사> <동아시아사> 교육의 축소에도 한국사회를 무덤덤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 치더라도 그를 위해서는 더더욱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를 배워야 한다. 한국사처럼 외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역사도 흔치 않다. 중국사를 모르고 전근대 한국사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본사를 빼고 근대 한국사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가.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