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역사에 밝았던 이순신이란 사람

김육이란 정승이 이순신의 역사적 식견에 관해서 쓴 짧은 글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잠곡유고> 제13권). 이순신이 무과 시험을 볼 때 시험관이 물었단다. “한나라의 장량은 적송자란 신선과 함께 노닐었다고 <무경>에 나와 있다. 장량은 과연 죽지 않았던 것인가?” 그러자 이순신이 이렇게 대답했다. “한나라 혜제 6년(기원전 189년)에 유후 장량이 죽었다고 <자치통감강목>에 적혀 있습니다. 어찌 죽지 않았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시험관이 깜짝 놀라며, 평범한 무사라면 어찌 거기까지 알 수 있겠느냐고 했단다.

 

이순신이 역사에 두루 밝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동시대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지조가 확고하고 몸가짐도 법도 있는 선비와 같았단다. 그랬기에 모함에 걸려 옥에 갇혔을 때도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것처럼 태연했다고 한다.

 

과연 이순신은 역사 마니아였다. <난중일기>의 원본을 살펴보면 정유년(1597년) 10월8일자 일기 뒤편에 송나라 역사책을 읽고 나서 쓴 ‘독송사’라는 후기가 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호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강(李綱, 송나라 대신)은 떠나려고 하는가. 가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신하가 임금을 섬길 때는 오직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그때는 사직이 위태로워서 한 가닥 터럭으로 천만근을 붙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신하라면 몸을 던져 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하였다. (이강이) 조정을 버리고 간다고 말했으니, 생각조차 못할 말이었다. 어찌 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던가.”

 

잠시 역사적 사실을 알아보면, 이강은 북송의 대신으로 여진족(금나라)의 침략을 막았다. 그러나 고종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조정에 다시 선 지 75일 만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송나라는 곧 망해버렸다. 이순신은 왜란 중에 조선의 형편이 북송 때와 다름없다고 여겼다. 그는 송나라 역사책을 읽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단다.

 

“내가 이강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몸이 망가지고 피를 쏟으며 울었고 간담을 상했는데도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적과는 화친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왕이) 듣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로 죽겠노라. (…) 혹시 죽음을 무릅쓰고 살길을 찾으면, 만에 하나 나라를 건질 도리가 있을 것이다. 이강은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조정에서 물러났다. 어찌 신하가 된 사람이 몸을 바쳐 임금을 섬기는 의리라고 말할 수 있으랴!”

 

이순신이 송나라 역사책을 읽고 밤새워 고뇌할 때 조정은 갈래갈래 찢어져 있었다. 서둘러서 일본과 평화조약을 맺고자 안달하는 이도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일신의 안일을 탐하는 무리가 적지 않았다. 그 점에서 우리의 이순신은 확연히 달랐다. “적과는 화친할 수 없고” 만약 뜻대로 안 되면 “그대로 죽겠노라”라고 했다. “몸을 바쳐서” 나라를 구할 뿐, 어떤 이유로든 물러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읽으면 사람이 이토록 장하게 될 수도 있는가.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그가 우리 역사도 읽은 사실이 드러난다. 병신년(1596년) 5월25일, 그날은 종일토록 비가 내렸고, 이순신은 홀로 앉아서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읽었는데 분하고 못마땅한 생각이 많이 났다.”

 

못마땅한 처사가 어디 과거의 일에 국한되었겠는가. 어느 날 밤, 이순신은 부하들에게서 칠천량해전 때 경상수사 배설의 행위가 어떠했는지를 듣고는 한참 괴로워하다가 이렇게 적었다. “권세가에게 아첨하여 제가 감당하지 못할 높은 지위에 올라서 나랏일을 크게 망쳤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살피지 못하고 있다. 이를 어찌하랴, 어찌하랴!”(<난중일기>, 1597년 8월12일)

 

나 같은 사람이야 그저 재미로 역사책을 읽고 가끔은 글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하찮은 사람조차 감동에 젖어 몸을 떨게 만드는 이순신이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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