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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이익이 들려준 이순신 이야기

경향신문 2020. 7. 23. 11:36

성호 이익의 글은 명쾌하고 분석적이라서 읽을 때마다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성호는 이순신에 관해서도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몇 차례 거듭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데, 특히 서너 가지 점에서 정말 탁견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이순신을 조정에 추천한 이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8세기에는 서애 류성룡이 왜란 때 정승으로서 많은 공을 세웠다며 호평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성호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류성룡의 공적이 아무리 많다 해도 이순신을 조정에 천거한 사실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보았다. 그의 설명이 대강 이러했다.

이순신은 본래 이름 없는 장교에 지나지 않았다. 류성룡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조선은 침몰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다. 성호는 그런 점에서 이순신을 역사의 무대로 불러들인 류성룡의 공을 후세는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성호전집, 제56권, <징비록의 끝에 기록하다>)

둘째, 성호는 이순신이 탁월한 경영자였다는 점에 크게 주목했다. 18세기에 이런 탁견이 나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이순신에게 통제사라는 벼슬만 주었지 전쟁물자를 거의 지원하지 못했다. 그때 이순신은 조정에 한 가지를 요청했고, 성호는 그 점을 눈여겨보았다.

 

“백성은 군수품을 조달하느라 이미 지쳤습니다. 부디 제게 해변 한 자락을 떼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군량과 병기를 마련해보겠습니다.” 조정의 허락을 얻은 이순신은 큰 솥을 만들어 바닷물을 증발시켜 대량으로 소금을 생산했다. 소금을 팔아 장만한 곡식이 수만섬이었다.(성호사설, 제14권, <서울에 병영을 두다>) 성호가 적절히 지적했듯, 경영에 성공했기 때문에 이순신은 막강한 해상전투력을 확보한 것이다.

 

셋째, 성호는 이순신의 정치력이 탁월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전쟁 중에도 이순신은 기술자들을 모아 부채 등의 사치품을 많이 비축하였다. 그는 이것을 고관대작들에게 선물로 뿌려서 자신에 대한 질투와 시샘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다. 성호는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지사들의 눈에 눈물을 떨어지게 하는” 충정이라며 찬탄하였다.(성호사설, 제25권, <두예 이순신>)

 

전공이 높았음에도 이순신은 매우 신중하고 외교적으로 처신하였다. 일반이 아직도 잘 모르는 사실이다. 그는 선물인지 뇌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물질 공세를 폈는데, 이는 부패하고 불공정한 조정 풍토를 정확히 헤아렸기 때문이다. 충신도 부패한 대신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이 인간사회의 비정한 현실일는지도 모른다.

 

넷째, 이순신의 공적에 대한 성호의 평가 역시 18세기의 역사 인식을 뛰어넘었다. 그는 이순신이 일관되게 펼친 ‘전략’의 효율성에 관심을 가졌다. 이순신은 적군이 바다와 육지에서 서로 협동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에게 자신들의 수군 활동이 저지되자 적군은 육군과 수군 모두 남해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성호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깊이 통찰하였다.

 

그가 분석하였듯, 전쟁 초기에 왜적은 평양을 수중에 넣고도 감히 압록강을 넘지 못했다. 그들이 믿었던 수군이 이순신에게 궤멸당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레짐작과는 달리 왜적은 자기네 수군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순신의 철벽을 넘지 못하고 연전연패를 당했기에 작전상 큰 차질이 발생하였다.(성호사설, 제25권, <양호>) 성호는 자신의 날카로운 분석을 토대로, 조선이 되살아난 것은 이순신의 공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공이 높으면 미움을 받기도 쉬운 일이다. 이순신이 겪은 고초를 보면 알 수 있다. 성호는 그 점을 안타까워하며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조선왕조의 사당인 종묘에 이순신의 위패도 함께 모시자는 주장이었다.(성호사설, 제23권, <기공>) 그리하여 후세에도 이순신 같은 충신이 연달아 나올 수 있게 사회 분위기를 혁신해 보자는 의견이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성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별다른 의미도 없는 정권 다툼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되풀이되었다. 만약 이순신이 다시 온다면 이번에는 그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chonmyongd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