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역사의 묘정

경향신문 2021. 6. 24. 10:16

묘정(廟庭)은 역대 국왕의 위패를 모신 종묘의 다른 이름이다. 그 국왕의 심복이었던 신하의 위패도 함께 모신다. 배향공신이라고 한다. 생전의 업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다. 배향공신으로 선발되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나라가 망해서 종묘가 없어지지 않는 한, 배향공신은 두고두고 국왕과 함께 제사를 받는다. 배향공신의 수는 국왕마다 다르다. 적으면 한두 명, 많으면 예닐곱 명이다. 이들은 국왕의 집권 과정과 통치 성격을 보여준다.

 

배향공신의 첫 번째 자격은 국왕의 집권에 기여한 공로다. 태조의 배향공신은 모두 개국공신이고, 태종의 배향공신은 왕자의 난에 가담하여 태종의 정권 장악에 기여한 자들이다. 세조의 배향공신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몰아낸 자들이고, 중종과 인조의 배향공신은 연산군과 광해군을 축출한 반정의 주도자들이다. 국왕 즉위 전에 죽었더라도 즉위에 기여한 공로가 있으면 된다. 김창집은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었지만, 세제였던 영조를 보호한 공로를 인정받아 배향공신으로 선발되었다.

 

배향공신의 두 번째 자격은 상징성이다. 퇴계는 선조의 배향공신이지만, 퇴계가 선조 밑에서 벼슬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그다지 친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퇴계가 배향공신으로 선발된 이유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라는 퇴계의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효종의 배향공신 송시열도 마찬가지다. 송시열은 인조, 효종, 현종, 숙종 4대를 섬겼다. 효종이 승하하고도 30년을 더 살았으므로 효종의 배향공신으로는 적절치 않다. 그러나 정조는 송시열이 대명의리와 북벌의 상징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반대를 무릅쓰고 효종의 묘정에 배향했다.

 

배향공신의 세 번째 자격은 집권세력과의 관계이다. 배향공신 선발에는 권력의 입김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선조가 승하한 뒤, 퇴계는 배향공신에 선발된 반면 율곡은 제외되었다. 당시 퇴계의 제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율곡은 고종 때 와서야 비로소 배향되었다. 숙종의 배향공신이 소론 일색이고, 영조 이후의 배향공신이 노론 일색인 것도 권력의 향배와 관련이 있다.

 

배향공신 선발은 갈수록 엉망이 되었다. 순조 때 안동김씨가 정권을 잡자 정조의 묘정에 김조순을 배향했고, 고종 때 민씨가 세도정치를 펴면서 효종의 묘정에 민정중과 민유중을 배향했다.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장악하고 가장 먼저 한 일도 자기 아버지 남연군을 순조의 묘정에 배향한 것이었다. 배향공신의 자리를 둘러싼 각축전은 마지막 군주 순종의 묘정에 이완용이 배향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문득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묘정을 세운다면 누구를 배향해야 할까. 아직 세상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역사의 묘정에 세워보자. 편의상 존칭은 생략한다. 이승만의 묘정에는 이기붕을 배향해야 한다. 박정희의 묘정에는 차지철, 전두환의 묘정에는 장세동이 적격이다. 노태우는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김영삼의 묘정에는 아들 김현철, 김대중의 묘정에는 아무래도 박지원이다. 노무현의 묘정에는 누가 들어가야 할까. 혹자는 문재인이라고 하겠지만,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으니 따로 묘정을 세워야 한다. 이해찬이나 유시민이 적당할 듯하다. 두 사람 모두 노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으니 자격도 문제없다. 이명박의 묘정에는 이재오가 어떨까 싶다. 박근혜는 탄핵으로 물러났지만 굳이 정하라면 수많은 ‘진박’ 중에 고르면 되겠다.

 

그렇다면 문재인의 묘정에는 누가 들어가야 할까. 이낙연? 임종석? 아니다. 문 정부를 상징하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조국이다. 장관 노릇은 한 달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여당은 지금까지도 ‘조국의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마지못해 내놓은 어정쩡한 사과로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문재인의 묘정에 조국을 배향하면 조국의 지지자들은 영광으로 여기며 감격할 것이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본다. ‘내로남불에 무능한 중년남’이라는 여당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만큼은 인정해 줄 테니까.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