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피하라

경향신문 2020. 3. 26. 14:24

전염병 따위를 피해 거처를 옮기는 것을 피접(避接)이라고 한다. 전염병의 원인도 모르고 예방약도 치료약도 없던 시절, 그나마 전염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기에 피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유일한 전염 방지책이다.


국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궁궐에 감염자가 발생하면 국왕은 다른 궁궐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에 궁궐이 다섯 곳이나 있는 이유는 피접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경덕궁(慶德宮)은 애초에 피접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궁궐은 원래 단절된 곳이니 굳이 서울을 떠나 멀리 갈 것까지는 없다. 왕자와 공주는 민가로 피접했다.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궁궐은 어린이가 자라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건물은 크고 넓은데 사람은 적으니 어린 왕자와 공주들이 무서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 초기 왕자와 공주들은 대부분 민가에서 자랐다.


잘나가는 양반들은 집이 여럿이니 걱정이 없었다. 서울의 경저(京邸), 교외의 별서(別墅), 시골의 향제(鄕第), 이 중 적절한 곳으로 피접하면 그만이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혼란을 피해 어딘가의 별장에서 한가히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은 친척집이나 친구집으로 피접했다. 인심이 좋아서가 아니라 언제 처지가 바뀔지 모르니 순순히 받아주는 편이었다. 막막한 건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받아주는 곳이 없어도 살기 위해서는 떠나야 했다. 다 쓰러져가는 집일망정 몸을 눕힐 곳을 찾았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그조차 없으면 산속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갑작스러운 피접은 분쟁의 단서다. 버려진 폐가를 수리해 몇 년째 살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집을 비우라고 한다. 순순히 물러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새의 둥지를 빼앗는 뻐꾸기처럼 남의 집을 차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양반이 피접 따위를 빌미로 민가를 빼앗는 ‘여가탈입(閭家奪入)’은 조선 후기의 중대한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감염이 국지적인 확산에 그쳤다는 점이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없던 시절이라 전국적으로 퍼지는 사태는 드물었다. 한동안 어딘가로 피신해서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만 전염병이 수시로 발생한 탓에 피접도 잦았다. 짧아야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이어지는 객지 생활을 평생 되풀이했다. 피접은 일상이었다. 


덕계(德溪) 오건(吳健, 1521~1574)은 시골로 피접을 떠나면서 <중용> 한 권만 달랑 들고 갔다. 피접하는 동안 무려 1만번을 읽었다. <중용>에 한해서는 도사가 되었다. 스승뻘인 퇴계조차 인정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중용>은 내가 당신만 못하다.” 어려운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진한 결과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 이곳저곳 피접 다니는 바람에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고 밝힌 사람이 훨씬 많으니, 아무리 피접이 일상이었다지만 익숙해지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전염병 창궐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꿋꿋이 버텼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쓴 채 병든 가족을 간호하고, 죽으면 절차대로 상을 치른 일이 미담으로 전하기도 한다. 그들은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라며 피접을 거부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모르거니와, 이미 죽은 사람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과연 온당한 행동일까. 퇴계는 말했다.


“피한다고 반드시 사는 건 아니지만 피하는 게 사는 길이다. 피하지 않는다고 반드시 죽는 건 아니지만 피하지 않는 건 죽는 길이다.”


퇴계는 전염병이 유행하면 부모가 죽었더라도 피해야 한다고 보았다. 죽고 사는 것이 운명이라지만 제 발로 죽는 길에 들어가면서 살기를 바랄 수는 없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피하라. 퇴계의 결론이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전염병 앞에 무력하다. 더구나 코로나19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피하려 해도 피할 곳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물리적 거리 두기’가 유일한 대책이다. 하지만 확산세가 꺾이면서 경계심이 약해지고 있다. 예배를 만류해도 꿋꿋이 계속하고, 학원은 슬그머니 문을 연다. 여행지도 북적이기 시작한다. ‘설마 내가 감염되랴’ 하는 안일한 생각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든다. 우리는 아직 코로나19와 싸워 이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길 수 없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장유승 |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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