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우리들의 평양감사

경향신문 2021. 4. 8. 10:23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는 세 폭짜리 ‘평안감사향연도’를 아실 것이다. 몇 달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한 작품이다. 대동강을 무대로 펼쳐진 풍속화인데, 영조 21년(1745년)의 그림이라고 한다. 그때 작품이라면 그림 속 평안감사는 이종성이었다. 영조 21년 4월5일, 이종성은 평안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실록> 참조). 그는 당대 명인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사도세자가 궁지에 빠졌을 때 최선을 다해 보호한 신하로 그 명성이 높았다.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숭되자 그 묘정에 배향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종성은 폐단을 바로잡는 데 관심이 많아 실학자의 저술도 환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영조에게 실학자 유수원의 등용을 촉구했다(영조 13년). 제도의 폐단을 잘 아는 선비로는 유수원이 제일이라면서, 영조에게 <우서>를 바치기도 했다. 그러나 유수원은 끝내 발탁되지 못했다.

 

유수원의 <우서>에는 평안감사에 관한 정보도 있다. 감사에게 지공(支供, 바침)하는 돈이 매월 1000관(貫) 이상이라고 했다(<우서>, 7권). 1만냥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어떤 이는 ‘지공’을 연봉과 같은 것으로 보아, 평안감사가 현재 화폐로 60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글쎄다. 우선 현재 가치로 환산하기도 곤란한 데다 지공이 과연 오늘날의 연봉과 같은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평안감사는 엄청난 재량권을 행사했다. 그는 현지에서 거둔 세금(곡식)을 조정에 바칠 필요가 없었다. 원칙적으로는 세금 일부를 떼어서 군수물자를 비축하고, 해마다 중국에 오가는 사신을 접대하면 되었다. 실제는 감사가 국방을 위해 돈을 지출한 적은 거의 없었고, 오가는 사신을 접대하는 데 세금을 모두 썼다(<우서>, 7권). 이처럼 재정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은 평안감사만 누리는 특권이었다. 또 유수원도 기록했듯 그 시절 평안도는 상업이 발달해 많은 재화가 평양으로 모여들었다. 감사의 임기는 고작 1년이었으나, 재물을 다루는 재주만 좀 있다면 한 밑천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속담에 “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보다 덜 알려졌으나,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가 낫다”는 속담도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맛 좋은 소금이 1년짜리 평양감사보다 낫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뉘라서 평양감사를 사양할 것이며, 소금과 감사 자리를 놓고 고민했겠는가.

 

평양감사는 만인이 부러워하는 자리여서 시기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꼭두각시놀음에 ‘평양감사대부인행상거리’가 있다. 감사의 모친이 작고해 상여가 나갔는데, 평양감사인 아들은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단다. 조문객들이 욕했다는 이야기인데, 피도 눈물도 없는 탐관오리의 상징이 평안감사였다. 내 이야기의 주인공 이종성과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청렴하고 평안감사로서 민간의 폐단을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그 역시 거창한 풍속화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부귀영화를 누리기는 했다.

 

나는 이종성을 평안감사라고 부르다가 평안도관찰사 또는 평양감사라고 했다. 누군가는 ‘평양감사’라는 벼슬은 없다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평안도를 통치하러 갔는데, 왜 평양감사라고 부르냐는 의문이 들 법하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평양감사라는 표현이 존재했다. 그때는 전라감사를 ‘전주감사’라고도 했고, 충청감사를 ‘충주감사’라고도 일컬었다. 관청 소재지를 붙인 호칭이었다.

 

출세한 관리들은 평양감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 사정을 알았던 유수원은, “누군들 평안감사가 되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적었다(<우서>, 5권). 지금은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에 뽑히는 것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첩경일지도 모르겠다. 듣건대 시장노릇하면서 큰돈을 번 이도 제법 있었다는 것 같다. 아서라, 세상을 그렇게 산다면 손가락질받던 평양감사와 뭐가 다를까.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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