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유튜브 단상

경향신문 2021. 3. 25. 09:49

며칠 전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베트남에 와서 하면 안 되는 것들이라는 주제를 담았는데, 그중 하나가 인상적이다. 절대로 정부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베트남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정부 비판에 대해 권위주의적 억압을 가하는 것은 중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도 한 세대 전에는 그랬다.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일본인들도 정치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사회계층이 따로 있다고 여긴단다.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오늘날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매우 예외적이란 느낌을 갖게 된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1945년 이후 미국이 가져다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직업병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한국의 역사적 전통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에 흥미로운 기사가 나온다. 조선이 건국된 지 6년 남짓 지났을 때 기사이다. “지경연사 조박이 나와서 말했다. ‘임금이 두려워할 것은 하늘이요, 사필(史筆)입니다. 하늘은 푸르고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리(天理)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사관은 임금의 착하고 악한 것을 기록하여 만세에 남기니, 두렵지 않습니까?’ 임금이 그렇게 여겼다.” 경연은 왕의 공부 자리이다. 지경연사는 경연을 주관하는 관직이다. 조박은 현실의 최고 권력자 국왕 면전에서 임금보다 천리와 사필에 더 높은 권위를 부여했다. 어찌 들으면 그 어조가 협박처럼 들린다. 그런데도 “임금은 그렇게 여겼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성리학 때문이다.

 

성리학을 주자학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주자, 즉 주희가 성리학 성립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가 추앙받았던 이유는 전통시대 한국과 중국 지식인들에게 정치적 시민권을 손에 쥐여주었기 때문이다. 주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하버드대학 피터 볼 교수에 따르면, 주희 이전 사(士) 계층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발언권을 갖지 못했다. 정치는 황실과 조정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일이었다. 그런데 주희는 정치에 대한 발언권이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가 아닌, 배움과 학문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독서인은 잠재적 정치인인 셈이다. 그의 주장은 점차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가령 여성이나 재산 없는 사람들도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 어떤 사상가의 공헌이라면 그를 기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성리학은 중국에서 나왔지만 조선이 철저하게 구현했다. 성리학은 현실의 최고 권력자보다 보편적 원리와 역사에 더 높은 권위를 부여했다. 왕조시대에 임금보다 천리와 사필을 더 높이 둔 것이나 오늘날 최고 권력자보다 민주주의를 더 중히 여기는 것은 다르지 않다. 사실, 그것이 권위주의를 넘어서는 근본적 힘이다. 우리말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당한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 우리는 현실 권력을 뛰어넘는 공정하고 보편적인 법이 있다고 믿는다. 사실 그런 법은 없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생긴 것이다.

 

현 정부는 2016년 말 촛불집회 속에서 탄생했다. 흥미롭게도 당시 집회를 이끄는 정당이나 사회적 명망가 혹은 힘 있는 전문가 집단은 없었다. 그러고는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외쳐졌다. 이제 한국에서 정부 비판은 자유롭다. 그런데 새로운 위험이 어른거린다. 헌법 제1조 1항이 대변하는 공동체 이익이, 조직화된 힘 있는 전문가 집단과 충돌하는 모습이다. 그 집단들이 오히려 정부 비판의 선봉에 서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외형을 띠지만 현재 한국이 도달한 민주주의는 아니다. 헌법 제1조의 구현을 위해서 주희가 주장했던 것이 현대적 버전의 국민주권으로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되어야 할 상황처럼 보인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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