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육식은 죄악이 아니다

경향신문 2021. 11. 11. 09:59

채식이 생명을 위하는 길이라는 관념은 고대 인도의 산물이다. 모든 생명은 윤회하므로 동물을 먹는 건 사람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관념이다. 채식은 괜찮다. 식물은 윤회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불교의 육도윤회에 식물은 포함되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은 식물을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식물도 생명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고, 피가 튀지 않는다고 생명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채식이 ‘생명’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육식이 악이면 채식도 악이고, 채식이 선이면 육식도 선이다.

 

요즘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모양이다. 하지만 축산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축산업이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믿기 어려운 통계가 있는가 하면, 전 세계인이 모두 비건으로 전향하더라도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연구도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18%이며, 육류 관련으로 한정하면 11% 수준이다. 이조차 과다계상되었다는 전문가들의 반론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1% 수준이라고 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채식은 환경을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주범은 화석연료이며, 따지고 보면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아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곡물 재배를 위한 경작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길이지, 축산업을 없애는 길이 아니다.

 

축산업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달린 산업이다. 축산업 종사자의 생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고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생존과 건강을 말하는 것이다. 채식으로도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은 소수의견이다. 절대다수의 의사가 ‘골고루 먹기’를 권장한다. 채식이 건강에 좋다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축 대량사육이 본격화한 시기는 1970년대이다. 그때까지 우리의 식생활은 조선시대와 별 차이가 없었다. 밥상은 곡물과 채소 위주였고, 고기는 구경조차 어려웠다. 닭은 물론 계란도 귀했다. 어쩌다 돼지라도 잡으면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일년에 몇 번 없는 행사다.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아이들은 애벌레도 집어삼키고 메뚜기와 개구리도 구워먹었다. 산에 가서 토끼를 사냥하고, 복날이면 개를 잡아먹었다. 그래도 영양이 부족한 탓에 여자는 한 차례의 출산으로 모발과 치아가 빠져 할머니 몰골이 된다. 남자는 출산을 하지 않으니 좀 낫지만, 마흔이 넘으면 노인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늙은이 ‘옹(翁)’은 원래 마흔 넘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을까? “육식은 줄여야 하지만 곤충은 못 먹겠고, 야생동물은 잡으면 안 되고, 개는 먹으면 안 되며, 일찍 늙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육식을 줄이면 우리가 먹는 동물의 종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기가 귀해지면 사람들은 동물의 종류를 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생동물도 잡아먹을 테니 자연히 인수공통전염병의 감염도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지금, 팬데믹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채식이 생명과 환경을 덜 해치는 길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이제는 육식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는 것도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육식에 힘입어 진화한 인류가 육식을 죄악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지금도 사육, 도축, 가공, 판매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노동자가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을 죄인 취급하면 곤란하다.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