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동남사 사진기에 담긴 ‘추억의 흔적’

경향신문 2021. 10. 8. 09:39

동남사에서 1970년대 생산한 사진기.

사진기가 귀했던 1970~1980년대, 사람들은 주로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증명 사진, 가족 사진, 백일 사진, 돌 사진. 그 시절의 사진관 사진기는 큼지막한 것이 많았다. 삼각대 위에 사진기 본체(암함·暗函)를 올려놓고 사진사는 검은 천을 뒤집어쓴 채 렌즈를 조절하고 셔터를 누르곤 했다. 그 커다란 사진기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전남 순천시 도심에 가면 동남사진문화공간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그 옛날의 큼지막한 사진기들이 즐비하다. 사진 관련 박물관 몇 곳에서도 옛날의 대형 사진기를 만날 수 있지만, 순천의 이 공간은 그 의미가 매우 각별하다. 초창기 사진기를 생산했던 동남사가 자리했던 곳이 순천이고, 동남사진문화공간이 그 내력과 흔적을 잘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사의 뿌리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순천에 김철우(1914~1982)라는 사진가가 있었다. 목포 출신으로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1936년경 목포역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942년 순천으로 옮겨 가네다(金田)사진관을 개업했고 광복 이후엔 아세아사진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어 1947년엔 사진기 재료점을 열었다.

 

김철우는 사진기를 직접 만들고 싶었다. 이런저런 준비 끝에 1952년 순천시 중앙동에 동남사진기공업사를 창업해 목형 대중판(大中板)사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엔 회사 이름을 동남사로 바꾸었다. 동남사가 생산한 대중판 사진기는 대형 뷰 카메라였다. 4×6인치 이상의 커다란 원판 필름을 사용하는 사진기로, 주로 사진관 스튜디오에서 인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데 쓰였다. 동남사 사진기는 인기를 끌었고 전국적으로 팔려나갔지만 1976년 화재로 공장 건물이 불타버리면서 아쉽게 문을 닫았다.

 

동남사진문화공간은 동남사 사진기와 다양한 부속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본체를 비롯해 필름홀더, 삼각대, 스탠드, 셔터, 확대기….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지만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고 아직까지 작동이 가능한 것도 적지 않다. 본체의 경우 렌즈가 사라진 것도 있고 필름홀더나 셔터가 없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온전한 상태다. 동남사 제품에는 동남사진기공업사, 동남사의 상표가 빠짐없이 붙어 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상표에 제품 생산지인 ‘순천’을 빠뜨리지 않고 표시해 놓았다는 점이다. 순천에 대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비록 렌즈는 수입품을 사용했지만 동남사의 사진기 생산은 사진기 국산화의 초석이 되었다. 1950년대 열악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동남사 사진기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동남사 사진기와 부속품들은 우리나라 근대 사진기의 발전사, 사진문화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근대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동남사진문화공간은 동남사 창업자의 아들인 김중식씨가 2019년 조성했다. 김씨는 이곳을 순천지역 사진문화사의 흔적을 전시하고 연구하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동남사 사진기는 다른 곳에서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자의 유족이 제품을 문화공간을 꾸며 소장 전시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남사진문화공간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올해 봄, 순천 현지 조사과정에서 김씨를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청년처럼 열정적이었고 동남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사진기에 순천이라는 지명을 꼭 표시했던 아버지의 열정과 자부심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천과 관련해 오래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순천에 순천대학교가 있는데 그 순천대에 사진예술학과가 있다는 사실. 요즘같이 실용과 취업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지방의 대학에 사진예술학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늘 궁금했었는데 동남사 사진기와 동남사진문화공간을 만나고 나니 이제 그 궁금증이 좀 풀릴 것 같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