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서울역그릴과 ‘Since 1925’의 간극

경향신문 2021. 12. 3. 11:11
 
일제강점기 서울역그릴 개업 당시의 모습. ⓒ서울특별시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96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첫 양식당 ‘서울역그릴’이 11월30일 문을 닫았다. 몇 년만 더 버티면 100년인데,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하지만 서울역그릴의 퇴장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래서 더 아쉽다.

서울역그릴은 1925년 10월 옛 서울역사(驛舍) 2층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옛 서울역사는 1925년 9월 준공되었다.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중앙 건물엔 비잔틴풍의 돔을 얹었고 앞뒤 네 곳에 작은 탑을 세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역사의 처마엔 지름 1m가 넘는 대형 시계를 걸었다. 1층에는 대합실과 귀빈실, 2층에는 이발실, 양식당이 있었고 지하는 사무실로 사용했다.

서울역 건물은 완공 당시부터 화제였다. 특히 양식당 그릴의 인기가 대단했다. 식민지 시대, 근대 문물을 즐기려는 멋쟁이들이 그릴에 몰렸고 그렇다보니 그릴은 양식당 자체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광복 이후 1970, 1980년대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맞선을 보는 청춘 남녀, 출장을 다니는 샐러리맨들이 이곳을 찾았고,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에게 이곳에서 양식을 사드리려는 자녀들도 많았다. 2층 그릴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돈가스, 함박스테이크를 썰었다.

옛 서울역사는 매우 각별한 근대 건축물이다. 1925년 건축 이후 2003년 철도역으로서의 기능을 마감할 때까지 80년 가까이 수많은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20세기를 건너온 사람들은 저마다 서울역에 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옛 서울역사는 KTX 서울역사가 바로 옆에 신축되면서 2003년 12월31일 철도역으로서의 기능을 마감했다. 그 후 서울역그릴은 KTX 서울역사 4층에 다시 문을 열었다. 사실, 그때 그릴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옛 서울역을 떠나 새 건물로 옮긴 그릴에서 20세기의 애환과 낭만을 기억해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내부를 고풍스럽게 꾸몄다고 해도 옛 서울역사의 그릴과는 그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그냥 돈가스를 파는 양식당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Since 1925’ 문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어려워졌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자신의 소중한 역사(歷史)인데도 그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릴을 떠나보낸 옛 서울역사는 2011년 8월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고 이름을 ‘문화역 서울 284’로 바꾸어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릴이 있던 2층에는 그릴의 내부 인테리어를 복원해 놓았다. 그러나 벽체와 창틀, 천장을 복원했지만 전체적으로 그릴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전시나 공연 행사가 주로 열린다. 그릴과 함께했던 우리네 삶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릴은 옛 서울역의 명물이었다. 그런데 옛 서울역사를 복원한 공간에서 그릴과 관련된 콘텐츠는 실종되었다. 그릴 공간뿐만 아니라 지금의 옛 서울역 공간이 전체적으로 그렇다. 서울역의 원래 기능이나 본질적인 의미를 경험할 수 없다는 말이다. 건물을 복원해 시각적인 유형의 흔적은 되살려 놓았지만, 거기 담겨 있는 우리네 삶의 무형의 흔적은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1925년생 서울역그릴은 이렇게 옛 서울역사와 새로운 KTX 서울역사에서 모두 소외되었고 끝내 문을 닫게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오래전부터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2004년 KTX 서울역사를 지으면서, 2011년 옛 서울역사를 복원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서울역그릴 Since 1925’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이제, 늦었지만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옛 서울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서울역그릴의 낭만과 애환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100년 노포(老鋪)’는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이광표 서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