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성냥이 그리워질 때

경향신문 2021. 9. 13. 10:17

옛 성광성냥 공장에 남아 있는 성냥제조 윤전기. ⓒ의성군

근대 문물이 가장 빨리 들어온 곳, 인천 개항장. 이곳의 여러 박물관을 둘러보면 유독 두드러진 전시물이 있다. 성냥이다. 조금 떨어진 동인천역 배다리에는 성냥 전문 박물관도 생겼다. 몇 해 전엔 인천시립박물관에서 근대기 성냥과 불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다. 왜 성냥일까. 한 시절, 인천이 성냥의 메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성냥공장이 처음 생긴 것은 1880년대 중반. 이보다 10여년 앞서 서양과 일본으로부터 성냥이 수입되어 사람들을 매료시키자 어느 외국인이 서울 양화진과 인천에 공장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곧 문을 닫았고 1917년 제대로 된 근대식 성냥공장이 인천에 들어섰다. 일본인이 세운 조선인촌(朝鮮燐寸)주식회사였다. 이 회사는 일제강점기 국내 성냥 소비량의 3분의 1을 점유할 정도로 번창했다. 이후 대한성냥 등이 가세하며 인천은 성냥 생산을 주도했다.

 

광복 이후 성냥공장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성냥은 가장 중요한 생필품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는 성냥의 전성기였다. 한 해 생산량 2억갑(1갑에 약 500개비)을 넘었고 외국에 수출까지 할 정도였다. 성냥과 양초는 집들이 선물로 최고였고 성냥 세트까지 인기를 끌었다. 전국의 오일장에선 다소 질 낮은 성냥을 됫박으로 싸게 파는 일도 흔했다.

 

성냥은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다방에 앉아 성냥으로 탑을 쌓다 무너뜨리고 또 쌓기를 반복했던 젊은 연인들. 성냥개비를 활용한 퀴즈놀이도 유행했고 다방, 제과점 등의 성냥갑을 모으는 사람도 많았다. 성냥은 일종의 문화상품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가스라이터의 보급 등으로 수요가 줄더니 2000년대 들어 성냥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전국 곳곳의 수많은 성냥공장들도 2017년을 마지막으로 모두 문을 닫았다. 경북 의성의 성광성냥과 경남 김해의 경남산업은 끝까지 버틴 마지막 성냥공장이었다. 이들은 원목 가공부터 포장에 이르기까지 성냥 제조의 전 공정이 가능한 대형 성냥공장이었다.

 

1947년 설립된 경남산업의 대표 브랜드는 기린표 성냥. 1970년대 호황을 누리며 한때 직원이 300여명에 달했다. 1954년 설립된 성광성냥은 향로 성냥을 생산했다. 1960~70년대엔 16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어려웠던 시절, 두 공장은 의성과 김해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고 성광성냥은 2013년에, 경남산업은 2017년에 문을 닫았다.

 

우리와 한 시대를 함께했던 성냥들. 그 흔적은 남아 있을까. 경남산업의 공장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다. 그러나 일부 기계는 보존되어 현재 김해시 성냥전시관에 전시 중이다. 성냥개비 정리 기계, 성냥갑 인쇄종이 절단 기계, 사각통 성냥갑 제작 기계, 성냥갑에 성냥 넣는 기계….

 

성광성냥 공장은 8년째 가동이 중단되었지만 공장 건물과 기계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다. 건물 13개 동, 기계와 설비 190여건. 대단한 규모다. 그동안 건물과 기계를 보존하고 되살려 성광성냥을 기억하기 위한 박물관 및 체험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예산 확보 문제로 진척이 없었다. 자칫 공장 건물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지난해 성광성냥 공장이 정부의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예산 확보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최근엔 토지와 건물, 기계의 기증 소식까지 들려왔다. 이제 몇 년 뒤면 성광성냥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성냥이 그리울 때가 있다. 기린표(경남산업), 향로(성광성냥), 비호표(대림성냥), 비사표(남성성냥), 비마표(조양성냥), 두꺼비표(금남산업), 아리랑(조일산업), UN(유엔화학), 삼학(영화인촌산업), 대한(대한성냥공업)…. 아, 성냥 이름만 들어도 유황 냄새가 코끝을 확 스쳐가는 듯하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