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양조장의 추억

경향신문 2021. 8. 13. 10:08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한 전남 담양의 옛 해동주조장.

지금이야 맥주 브랜드가 넘쳐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비’는 맥주의 대명사였다. 오비맥주의 뿌리는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의 기린(麒麟)맥주는 서울 영등포에 맥주공장을 지었다. 그것이 훗날 동양맥주, 오비맥주로 이어졌다. 영등포역 바로 옆 드넓은 공장은 오랫동안 우리나라 맥주의 상징공간이었다. 오비맥주는 1997년 경기 이천으로 공장을 옮겼다. 그러면서 공장 건물과 굴뚝을 모두 철거했다.

 

일본 삿포로(札幌)는 맥주의 도시다. 삿포로맥주는 1876년 삿포로 도심에 공장을 세웠다. 100여년이 흐르고 1993년 공장을 도시 외곽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공장의 굴뚝과 건물 일부를 살려 문화생활공간으로 바꾸었다. 그 가운데 양조공간은 맥주박물관으로 꾸몄다. 그건 단순한 맥주의 역사가 아니라 삿포로의 역사였다. 흉물스럽던 공장 굴뚝은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 외곽으로 옮긴 맥주공장에도 맥주박물관을 하나 더 만들었다.

 

얼마 전 전남 담양을 찾았다가 흥미로운 문화공간 해동문화예술촌을 만났다. 막걸리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어린이 체험공간 등 공간은 다채로웠다. 그곳은 원래 양조장이었다. 1950년대부터 2010년까지 소주와 막걸리를 빚은 해동주조장. 한동안 방치됐던 양조장이 최근 문화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양조장의 흔적을 더욱더 드러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지방의 소읍에서 이런 공간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양조장! 우리 20세기에서 양조장만큼 삶의 애환이 깃든 공간도 드물 것이다. 양조장이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20세기 초였다. 조선시대엔 집에서 술을 빚었으나 1916년 주세령의 시행으로 가양주(家釀酒)가 금지되었다. 모든 술은 허가받은 양조장에서 생산해야 했다. 그렇게 양조장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1970~1980년대 읍이나 면 단위의 중심 지역엔 어김없이 양조장이 한두 개씩 있었다.

 

이런저런 부침이 있었으나 양조장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2019년 국립민속박물관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막걸리 양조장은 660여곳. 여기에 수제맥주, 와인, 전통주의 양조장도 있으니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양조장의 상황이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100년 역사를 이어가는 양조장도 있고 갓 태어난 양조장도 있다.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양조장도 있고 전시공간을 갖춘 양조장도 있다. 물론 폐허가 된 양조장도 있다.

 

최근의 막걸리 열풍, 수제맥주 열풍은 양조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00년 넘게 막걸리를 생산하다 2018년 폐업한 경북 영양의 영양양조장은 최근 재기를 꿈꾸고 있다. 영양군은 이곳에서 막걸리를 다시 빚고 동시에 생활문화공간도 조성하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허전하다. 20세기 양조장의 흔적을 제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드물기 때문이다.

 

일본 가가와(香川)현의 작은 마을 고토히라(琴平)에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긴료(金陵) 양조장이 있다. 그 역사가 무려 200여년에 이른다. 지금도 술을 제조하고 있으며 양조장 공간 일부를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그 양조장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캐나다 토론토에는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역사지구’가 있다. 이곳은 원래 대규모 양조장이었다. 1990년대 가동이 중단되어 폐허로 변한 양조장을 2000년대 들어 문화상업공간으로 재생시켰고 지금은 토론토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었다. 성공의 핵심은 양조장의 진정한 흔적에 있었다.

 

10여년 전 들렀던 충남 서천의 어느 양조장이 생각난다. 한산모시 오일장 근처였는데, 지금도 막걸리를 빚고 있을까. 혹 건물이 헐린 것은 아닐까. 바로 옆에는 100년이 다 된 대장간도 있었는데. 아, 나도 참 무심했구나. 여름이 가기 전 한산에 다녀와야겠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