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

경향신문 2021. 7. 1. 09:42

서애 유성룡이 이순신 장군에게 편지를 보냈다.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남쪽으로 내려갈 것이니, 잘 협력해 공훈을 이루기를 기원하노라고 썼다(<서애선생 별집> 제3권). 진린은 명나라 수군 5000명을 거느리고 와서 한동안 당진에 정박했다. 그러다가 남쪽으로 가서 이순신과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진린은 포악하고 교만했다. 선조가 멀리 양주(청파)까지 가서 전송할 때도 그는 조선의 관리를 폭행했다. 유성룡은 친구 이순신의 앞날이 걱정되어 편지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헤아린 이순신은 음식을 많이 장만하여 진린 일행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하지만 얼마 후 명나라 수군은 본색을 드러냈다. 그들은 우리 백성을 함부로 약탈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식량과 의복을 가지고 배에 오르며, 진린을 나무랐다. “명나라 군사들의 행패 때문에 우리 군사가 다 흩어졌다. 대장인 나만 홀로 여기 있을 수 없어, 다른 섬으로 간다.” 그제야 진린이 사과하며 이순신을 붙들었다(김육, <잠곡유고> 제13권 ‘통제사 이 충무공의 신도비명’).

 

명나라 수군은 전투도 잘하지 못했으나 이순신은 연합군인 그들을 우대했다. 녹도만호 송여종이 명나라 수군과 함께 왜적을 상대했을 때였다. 우리 수군은 적 70명의 목을 베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전과도 없었다. 진린이 화를 내며 소동을 피우자 이순신은 왜적의 머리를 모두 그에게 양보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부하를 위로했다. “왜적의 머리는 썩은 살덩이에 불과하다. 그대의 공은 내가 임금께 사실대로 모두 아뢰었노라.” 선조 31년(1598) 9월21일자 <난중일기>에서도 이순신은 왜적의 배와 여러 물건을 빼앗아 진린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해 10월3일, 진린은 왜군과의 접전 끝에 평저선(沙船)과 전선(虎船)을 40척이나 잃었다. 이순신은 “도독(진린)이 엎어지고 자빠지는 꼴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난중일기>에 적었다. 진린의 부하들은 전투에 능숙하지 못해 후미에서 기세를 돋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명나라 군대의 말썽은 끝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왜군의 뇌물을 받아 챙기며 전투를 회피했다. 선조 31년 10월 초순, 이순신은 명군과 함께 수륙 양면에서 왜장 소서행장을 공격하기로 약속했으나, 명나라 장수들이 뇌물에 매수되어 전투가 불발에 그친 적도 있었다. 그러자 이순신은 나뭇조각(木片)에 글을 적어 진린을 조용히 꾸짖었다. 명군의 기강은 상상할 수도 없이 무너져 있었다. 전쟁 말기 남해의 왜적은 식량 부족으로 쩔쩔맸는데, 명나라 사람들이 그들에게 식량을 팔아서 이익을 챙겼다(이식, <택당선생 별집> 제10권).

 

노량해전이 임박했을 때도 진린의 도독부로 몰래 왜장이 들어와서 돼지 2마리와 술 2통을 바쳤다(<난중일기> 무술년 11월14일). 그 이튿날도 왜선 두 척이 몰래 두세 차례나 진린을 방문했다. 노량해전이 일어나기 하루 전(11월16일)에는 왜선 3척이 진린을 몰래 찾아와서 말과 창칼 등 뇌물을 바쳤다. 그런데 중·일 간의 모든 비밀거래를 이순신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탐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내 전투가 벌어졌다. 왜장 소서행장은 사천 지역에 주둔하던 살마주(薩摩州) 출신의 정예병까지 총동원했다. 그때 이순신은 적과 내통한 진린과 함께 노량바다에서 적선 500여척을 맞아 싸웠다.

적선 200여척을 불태우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끝내 그는 적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진린은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했다고 전하는데, 곧이어 그는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버렸다. 다행히 왜군의 재침은 없었다.

 

<명사(明史)>에 따르면, 명나라 황제는 진린의 공을 기리어 땅까지 떼어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린의 공이었는가, 아니면 이순신의 공이었는가(윤기, <무명자집문고> 제10책). 세상에는 앞뒤가 전도된 일도 없지 않으나 역사는 침묵하지 않는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 지원금  (0) 2021.07.15
두 세력의 개혁 경쟁과 개방 경쟁  (0) 2021.07.08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  (0) 2021.07.01
역사의 묘정  (0) 2021.06.24
퇴<退>, 회<晦>, 잠<潛>  (0) 2021.06.17
근대 일본의 묻혀진 목소리들  (0) 2021.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