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이순신의 죽음

경향신문 2021. 3. 11. 09:46

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 조정에서는 수군을 없애려고 했다. 신립 장군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자 이순신이 급히 글을 올려 수군이 중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진술했다. 대신들은 그 글을 읽고 생각을 바꾸었다. 윤휴의 <백호전서>(제23권)에 기록된 내용이다.

 

윤휴는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깊이 연구해 ‘통제사 이충무공의 유사’라는 글을 지었다. 마침 그의 서모(庶母)가 이순신의 딸이라, 윤휴는 이순신을 곁에서 모신 여러 부하와 집사 및 하인을 만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유사’는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없는 내용도 많고 신빙성도 높다.

 

많은 사람이 이순신의 최후에 관해 갖가지 억측을 했다. 심지어 장군이 그때 전사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도 있었다. 그날 현장에 있던 이순신의 측근은 무어라고 증언했을까. 궁금한 마음이 일어 ‘유사’를 꺼내 읽었다.

 

최후의 일전을 치르기 전날 밤, 이순신은 배 위에 올라 향을 피우고 축원했다. “하늘이시여, 적을 물리치게 도와주소서. 적이 물러가는 날, 제가 죽음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별이 바다에 떨어져 모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다음날 이순신은 선봉장이 되어 왜선을 추격했다. 배가 남해현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는 뱃전에 우뚝 선 채 화살과 돌멩이가 쏟아지는데도 피하지 않고 독전에 열중했다. 매우 위험한 일이라, 측근이 말렸으나 이순신은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 갑자기 날아온 흉탄에 맞았다.

 

이순신은 전에도 뱃전에서 싸움을 독려한 적이 있었다. 순천 예교(망해대)에서 싸울 때였는데 전세가 위급해지자 그가 뱃머리에 나섰다. 적의 표적이 되는 일이라 측근이 말렸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적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 왜적이 물러가면 내가 죽더라도 너희는 편안하게 될 것이다.”

 

이순신의 이 말을 전하며 윤휴는 잠시 붓을 멈추고 깊은 뜻을 찾았다. “공은 진실로 뱀과 독사(왜적과 간신배)가 세상을 해치고 어지럽히는 일(毒亂)에 분개하였고, 그와 동시에 고래(이순신)는 작은 도랑(세상)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는 것을 아셨다. 아, 슬프다.”(<백호전서> 제23권)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이순신은 자신이 세상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마음속으로 느꼈다는 해석이었다. 윤휴의 추론이 아마 옳을 것이다.

 

적이 물러가는 날,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이순신의 맹세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날이 오기 훨씬 전부터 이순신은 전쟁 이후 자신에게 닥칠 불길한 일을 미리 헤아렸고, 무엇보다도 부하들의 안위를 염려한 것 같다. “내가 죽더라도 너희(부하)는 편안하게 될 것이다.” 이 말에 깊은 여운이 깔려 있다. 왜적이 물러간 다음에는 자신과 사랑하는 부하들이 애매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순신은 하루에도 여러 번씩 떠올린 것 같다.

 

속 깊은 이순신을 끝내 잊지 못하는 부하들이 있었다. 옥형이라는 스님은 일찍이 이순신의 휘하에서 공을 세웠는데, 장군이 숨을 거두자 평생 장군의 넋이 깃든 충민사를 떠나지 못했다. 바다에 나쁜 일이 생길 때면 통제사(이순신)가 어김없이 꿈에 미리 나타난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순신은 죽어서도 국가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는 믿음이 확연하다. 윤휴는 스님의 그런 증언도 ‘유사’에 꼼꼼히 기록했다. 이순신을 따른 이가 어디 옥형 스님 하나였겠는가. 부음을 들은 남도 백성들이 모두 길거리로 쏟아져나와 통곡하고 제문을 지어 제사를 모셨다. 백성이 통곡하는 광경은 남도 어디서나 똑같았다고, 이항복이 글에 적지 않았던가(<백사집> 제4권).

 

진심으로 시민을 위하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된다. 이순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게 우리의 구질구질한 삶인데도 요새는 제 입으로 공치사하는 이가 너무 많다. 제발 물러갈 때라도 조용히 입 다물어라.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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