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장애인 시위에서 놓친 것들

경향신문 2022. 4. 28. 10:37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장애인단체의 요구는 불법 시위로 불편을 겪는 시민의 성난 목소리에 묻혀버렸을 텐데, 언론의 반응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시민의 불편을 언급했다가 뭇매를 맞고 장애인 혐오로 낙인찍힌 야당 대표를 보라.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할 만하다.

상반된 의견이 대립할 때 한쪽을 편들기는 쉽다. 시민의 불편을 부각시켜 시위 방식을 비판하는 것도 쉬운 일이고, 장애인의 불편에 공감하며 시위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이 상황에서 언론의 할 일은 한쪽을 편들어 발길질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편가르기의 와중에 놓친 부분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구부러진 것을 펴려다가 반대쪽으로 구부러뜨리는 ‘교왕과직’을 저지르지 않았는지도 보아야 한다.

우선 시위의 불법성 문제다. 지하철 운행방해는 명백한 불법이다. 다만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당한 요구를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극단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나부터가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답답하고 억울한 나머지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못하겠다. 물론 그에 따르는 책임과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시위방식을 문제 삼는 시민을 탓하지 마라. 직접 불편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분노할 권리가 있다.

시민의 분노는 변화의 원동력이다. 모든 시민이 장애인의 처지에 공감하고 기꺼이 불편을 감수한다면 정치인들은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출근길을 방해받은 시민의 분노와 비난이 들끓은 결과, 정치인들이 부랴부랴 휠체어를 타고 머리를 깎으면서 비로소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다만 그들의 목적이 장애인 처우개선인지, 아니면 ‘나는 장애인 시위를 비판한 어떤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차별화 전략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시위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이유는 안전에 직결된 사안이라 그렇다. 지하철 운행방해가 출근길이 조금 늦어지는 정도에 그친다면 다행이다. 배차 간격이 2, 3분에 불과한 출근시간의 운행방해는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상상황이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계속되면 누군가는 긴장의 끈을 놓치기 마련이다. 관제실에서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안일한 생각이 사고를 일으킨다. 세월호 참사가 불러일으킨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위에서 소외된 교통약자의 존재도 고려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장애인 전용이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지하철을 탈 수 없는 노인이 한둘이 아니다. 유아차도 마찬가지. 장애인 이동권이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교통약자의 편의와 안전은 꾸준히 개선되어왔다. 역사 플랫폼과 지하철 내부의 모니터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이며, 안내방송과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다. 역마다 설치된 제세동기, 객차마다 달린 비상인터폰, 스크린도어, 노약자석, 모두 교통약자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것이다. 출근시간의 지하철에는 이러한 배려에 힘입어 이동권을 누리는 교통약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교통약자의 권리를 확보하려고 교통약자의 권리를 방해하는 역설적 상황도 현실이다. 전장연의 시위에 비판적인 장애인단체가 존재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장애인 차별과 혐오는 뿌리 깊은 역사다. 하지만 장애인 배려와 공존 역시 뿌리 깊은 역사다. 한쪽만 있고 다른 한쪽은 없다고 한다면 왜곡이다.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20년간 변한 것이 없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과격한 구호와 행동은 사건을 쟁점화할 수 있다. 그러나 폭넓은 공감까지 얻기는 어렵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화될 위험도 주의해야 한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연재 | 역사와 현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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