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장인어른, 장모님인가 아버님, 어머님인가

경향신문 2021. 5. 27. 09:34

한강 정구가 퇴계 이황에게 물었다. “아내의 친족을 형, 아우, 숙부, 조카라 부르고, 아내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아내의 서열을 따르는 풍습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퇴계가 대답했다. “오늘날 아내의 친족 호칭이나 아내의 서열을 따르는 풍습은 모두 옳지 않다. 아내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풍습이 있기는 하지만, 결코 모범으로 삼을 수 없다.”

 

우리 결혼문화는 조선 중기까지 데릴사위제가 대세였다. 최근까지 신랑을 거꾸로 묶어놓고 발바닥을 때리는 악습이 유행한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동상례’라고 하는 오래된 풍습이다. 원래 가혹한 신고식은 새로운 구성원을 길들이는 방법이다. 신랑이 신부집으로 장가드는 데릴사위제에서는 신랑이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되므로 신랑 신고식을 치른다.

우리와 달리 중국은 철저히 부계 중심 사회였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시집가는 부계 중심 사회에서는 신부가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되므로 신부가 신고식을 치른다. 3세기경 편찬된 <포박자>에 결혼식날 음담패설로 신부를 희롱하거나,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는 풍습이 보인다. ‘희부법’이라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에서는 결혼식날 신부가 봉변을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장가드는 문화와 시집가는 문화의 차이가 동상례와 희부법을 낳았다.

 

데릴사위제의 영향으로 조선 중기까지 처부모의 호칭은 ‘아버님, 어머님’이었다. 그러나 유교적 예법은 두 아버지와 어머니를 용납하지 않는다. 유교적 예법에 투철했던 퇴계가 이런 관습을 인정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처부모의 호칭은 차츰 ‘장인어른, 장모님’으로 바뀌었다. 홍석주는 <학강산필>에서 말했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오랑캐의 풍습을 따라 사위가 처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조선 중기까지도 여전했는데 퇴계가 처음으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유학자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풍습이 없다.”

 

유학자들이 문제 삼은 풍습이 또 하나 있다. 남편이 처가의 서열을 따르는 것이다. 처가에서 남편의 위치가 나이순인지 서열순인지는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의 오빠가 나보다 어리거나, 여동생의 남편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난감하다. 서열과 나이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토착적 관습은 서열을 우선한다. 데릴사위제에서는 아내의 친족이 곧 남편의 친족이며, 아내의 서열이 곧 남편의 서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계중심제에서 모계의 서열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유학자들은 처가에서 남편의 위치는 아내의 서열과 무관하게 남편의 나이에 따라 정해진다고 보았다. 율곡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율곡의 둘째 누나가 윤섭에게 시집갔는데, 윤섭은 율곡보다 어렸다. 서열을 따지면 윤섭이 윗사람이지만, 윤섭이 처가에 오면 늘 율곡이 윗자리에 앉았다. 유교적 예법을 따른 결과다. 당시 율곡의 처사를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예학의 일인자였던 송익필은 율곡이 옳다고 단언했다.

 

그간 친족 간 호칭이나 예절을 둘러싼 논란은 이처럼 유교적 예법과 토착적 관습의 충돌에서 빚어졌다. 지금은 서구적 가치관까지 합세해서 3파전이다.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모계를 중시하는 토착적 관습이 비교적 평등해 보이지만, 그 모계 역시 ‘모친 집안의 부계’에 불과하다. 유교적 예법을 따른다고 외가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퇴계와 율곡 모두 외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그들은 옳다고 믿는 것을 따랐을 뿐이다. 물론 퇴계와 율곡이 유교적 예법을 따랐다고 우리가 따라야 할 이유도 없다.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에서 빚어진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해소된다. 조급할 것 없다. 그동안의 혼란은 가족 관념과 가치관의 변화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진통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