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전염병에 대한 공포

경향신문 2020. 2. 13. 10:5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 여러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에 따라 공포도 증가하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의학 지식이 크게 개선되었고 전염병을 관리하는 사회나 국가의 대처능력이 많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히스테릭한 반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염병의 확산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서 우려되는 문제는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과도하게 자극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14세기 중엽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에 관해서도 당대뿐 아니라 이후에도 많은 억측과 오해가 있었다. 


사실 당시 전염병이 어떻게 발병해서 퍼져나갔는지를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의 설명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바로잡기는 매우 어렵다. 아직까지도 통용되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해석에 따르면, 흑사병이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 본격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1346년 흑해 연안에서 벌어진 몽골군과 제노바 상인들 간에 벌어진 공성전이었다. 성을 공격하던 몽골군 내에 전염병이 퍼지자 몽골군이 흑사병으로 죽은 동료의 시체를 성 안으로 던져 넣었다는 것이다. 이 시체로 인해 감염된 제노바 사람들이 전쟁에서 패하고 배를 타고 콘스탄티노플을 경유해 시칠리아섬까지 갔고 전염병은 시칠리아로부터 북서유럽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흑사병에 걸린 제노바인들의 선박이 흑해에서 시칠리아섬까지 항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해석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몽골과 제노바 간의 전투를 최초의 세균전이라 부르고 전염병의 확산 책임을 몽골인들에게 전가하는 유럽 중심적인 해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14세기 중엽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고 유럽인들은 이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quarantine이었다. 검역을 뜻하는 영어 단어 quarantine은 원래 40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quaranta에서 유래했다. 지중해에서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매우 활발했던 국제 무역항 베네치아는 흑사병의 공격을 자주 받았고 이를 막기 위해 모든 선박을 입항하기 전에 40일간 먼바다에서 강제로 머물게 했다. 만약 배 안에 감염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치는 전염병에 걸렸을 위험이 있는 사람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하는 방식이었다. 즉 사회가 전염병을 치료하고 관리하기보다는 잠재적 보균자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간주하지 않고 피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흑사병에 대한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베네치아 가면무도회에 등장하는 메디코 델레 페스테라 불리는 가면이었다. 메디코 델레 페스테는 흑사병을 막기 위해 의사들이 사용한 가면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이것은 긴 부리와 눈구멍만 나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어 마치 펭귄처럼 보였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이 가면을 쓴 의사를 부리가면 의사라 불렀다. 


이런 모양의 가면이 만들어진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흑사병이 공기로 전염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기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긴 부리에 작은 구멍만을 내고 부리 안에는 각종 향신료, 허브 등을 채워 넣어 소독 효과를 높이려 했다. 그러나 의학의 발전으로 나중에 밝혀졌지만 흑사병은 호흡기 전염병이 아니었다. 


40일간의 격리나 이상한 모양의 부리 가면은 그 시대 기준으로 하면 나름 합리적인 대응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비이성적인 접근은 흑사병이 신의 징벌이라는 주장들이었다. 이렇게 믿었던 당대 기독교인들은 흑사병을 막아준다고 알려진 성인 세바스티아누스와 성인 로쿠스에 더욱 의존했다. 일부 사람들은 회개한다면서 자신의 몸을 가혹하게 채찍질하면서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아마 이로 인해 흑사병이 더 퍼졌을지도 모른다. 21세기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 일을 하면 전염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두렵지 않다면서 대규모 대중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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