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정말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 자주 듣는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임신 막달에 배가 너무 불러 위산이 역류하고 누워도 불편하여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이를 가지고 하소연을 하면, “그래도 배 속에 있을 때가 편한 줄 알아라”라고 위로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 말을 해 주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출산을 하고 나면 정말 더 힘들어지나? 확실히 몹시 괴롭긴 하였다. 밤낮이 바뀐 아이는 밤에 1시간 간격으로 깼다. 아직 젖 빠는 힘이 약한 아이는 30분쯤 걸려서 종이컵 반도 안 되는 분유를 간신히 먹고는 30분 까무룩 잤다 다시 깨곤 했다. 등판에 센서라도 달렸는지 눕히기만 하면 바로 깼기에 그 30분 잘 때도 품에 안은 채로 나도 같이 조는 수밖에 없었다. 출산 직후라 손목도 아프고 허리 위와 아래가 따로 노는 느낌인데 잠까지 못 자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애가 밤낮이 바뀌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또 이런 얘기가 들려왔다. “그래도 아직 못 움직일 때가 편한 줄 알아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정신없다”라고. 과연 그러하긴 했다.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어디에 가서 어떤 잡동사니를 입에 집어넣을지, 어느 전기 콘센트를 쑤실지 알 수 없기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화장실 한번 마음 놓고 가기도 힘들었다.

이런 일을 겪다가 한편으로 약간의 의문이 생겼다. 정말 지금보다 다가올 미래가 더 힘든 것일까?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편한 것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새 단계에서 옛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고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것뿐이지, 옛 문제가 더 쉽거나 새 문제가 더 어려운 게 아니다. 막달의 배부름이 빚어낸 많은 문제들은 아이를 낳고 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지만, 출산으로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밤낮이 바뀐 아기, 바닥에 누이기만 하면 깨는 아기도 몇 년씩 그러진 않는다. 대부분 몇 주에서 몇 달 안에 괜찮아진다. 그리고 이게 괜찮아질 때쯤 새로운 문제들이 또 뿜어져 나온다. 그러니 그 순간 내가 힘든 것은 아직 제대로 힘든 걸 경험해보지 못해 늘어놓는 약한 소리 같은 게 아니다. 그때그때 정말 힘들었다는 그 진정성은 동일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면서, 과거는 뭔가 덜 힘들고 괜찮았던 것처럼 착각한다. 어쩌면 이렇게 적당히 망각하고 미화하는 능력 덕에 힘든 현재를 견디는 힘을 얻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제대로 비교할 줄 알아야 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서 적절한 대응법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다 보면, 과거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임신 때도 힘들고, 출산 때도 힘들고, 육아도 힘들지 않은가? 뭔가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 힘듦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막달에도 잠을 못 자고 출산 후에도 잠을 못 자곤 하더라도, 그 이유가 다르고 그 방식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잔뜩 부른 배가 처지고 허리를 눌러 못 자는 것과, 아기가 자꾸 깨서 못 자는 것, 자는 애가 팽이 돌 듯 뱅글뱅글 돌며 내 옆구리를 차서 못 자는 것은 모두 다르다. 적어도 앞 단계의 불면은 해소되었기에 뒤 단계의 새로운 불면이 다가온다.

과거는 반복되지 않는다. 꾸역꾸역하니 답답할진 몰라도 이전의 문제는 해결된다. 대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그게 더 힘들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과거를 적당히 잊었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팬데믹의 흐릿한 출구 뒤로 여전히 어두운 그늘만 보이는 이 시점이야말로, 지금의 이 문제가 과거와 같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가늠하는 냉철함과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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