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조선시대 ‘언관’과 기자

경향신문 2020. 3. 19. 13:59

조선시대에는 ‘언관(言官)’이라고 부른 관리들이 있었다. 사헌부와 사간원 관리들이다. 두 기관은 ‘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그 ‘말’이란 감시와 비판을 뜻했다. 원래 사간원은 왕의 언행을, 사헌부는 영의정을 포함한 모든 관리들의 언행을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시작된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 두 기관의 기능은 서로 비슷해졌고, 나중에는 왕과 관리들 모두를 감시하고 비판했다. 그 결과 조선에서 언관의 기능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고 강력했다. 


왕조국가의 관료조직에서 ‘언관’의 존재는 모순적이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조선시대 언관을 현재 맥락에서 단순화시키면 기자들을 공무원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공무원들도 보직이 순환되었다. 언관이었던 관리들이 계속해서 그 자리에만 있지 않았다. 언관직은 대부분 하급직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비판했던 상급 직책으로 승진했다. 아무리 선의로 한 비판이라도 나이 어린 젊은 하급 언관의 비판을, 나이 든 상급 관리들이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늘날 기자들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정부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언관직은 엘리트 코스였다. 언관이었다는 것이 승진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언관들에게 비판받던 인사권을 가진 선배 관료들은 언관직 출신 후배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이것은 조선의 관료제도 운영이 원칙적으로 건강했음을 뜻한다. 그것은 권력이 감시받고 비판받아야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국왕을 포함한 조정 전체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선은 왜 비관료적인 언관을 관료조직 안에 넣어놓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조선이라는 정치체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조선왕조가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한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서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왕조국가에서 국왕 권력은 종신의 최고 권력이다. 지금처럼 잦은 선거를 통해 백성들에게 신임을 물을 필요가 없는 권력이었다. 심지어 국왕은 자기 다음의 국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력까지 가졌다. 반면 유학이란 결국 관료와 지식인들이 힘을 갖게 되어 있는 정치이념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왕조국가와 유학 사이에는 아무런 교집합이 없다. 문제는 국왕이 홀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관료와 지식인들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그 때문에 국가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려면 본래 아무런 관련도 없는 두 요소가 어떻게든 교집합을 만들어내야 했다. 조선의 여러 정치제도들은 이 무관한 두 요소의 교집합을 넓히려는 분투였다.


조선시대가 국왕의 절대권력과 유학의 결합을 지향했다면 오늘날 그에 해당하는 건 무얼까? 국왕 권력이 현실이라면 유학 이념은 당위였다. 아마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그것에 대응시켜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현실이라면 민주주의는 이상이다. 국왕 권력과 유학이 그랬듯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원리적으로는 아무 관련도 없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대부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하는 말일 뿐이다. 비정규직은 자본주의 관점에선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도 두 요소의 교집합 속에서만 정상적일 수 있다.


오늘날 기자들은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가? 조선시대처럼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을 궁극적 비판 대상으로 한다면 그 대상을 정확하게 포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조선시대에는 국왕과 그 대리자들인 관료가 최고의 힘을 가졌다. 오늘날은 회사 사주나 건물주같이 자본을 가진 주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말은 전혀 농담이 아니다. 사실 한국은 많은 영역에서 유럽은 물론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이나 병원 등 공적 논리가 작동되어야 하는 영역에서 그것은 뚜렷하다. 그것은 국가가 없었던 식민지 시기, 공적 통제가 부재했던 시기의 역사적 산물이다. 사익에 통제받지 않는 말을 지켜내는 일은 피곤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일이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정철 |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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