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조선시대 성교육

경향신문 2020. 7. 16. 14:35

<천자문>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도 ‘하늘 천, 따 지’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아예 <천자문>이 뭔지 모른다. <천자문>을 마치고 이어서 읽었던 <동몽선습> <격몽요결> <소학> 같은 교육용 필독서 역시 알 턱이 없다. 세상이 변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가르치던 것과 똑같은 식으로 가르치는 과목이 딱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성교육이다.

 

조선시대 성교육의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야담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더러 있지만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흥미 위주의 음담패설에 불과하다. 이밖에 춘화(春화)를 보면서 성교육을 했다는 둥, ‘보정(保精)’이라는 성교육 과목이 있었다는 둥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도 전부 낭설이다. 어쩌다 발견한 성 관련 자료를 짜깁기한 것이다. 부모가 가르친 것 같지도 않다. 가르쳤다는 사람도, 배웠다는 사람도 찾을 수 없다. 하기야 오늘날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성에 관한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 조선시대는 오죽했겠는가.

 

그렇다면 성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해서 부부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까. 솔직히 나도 궁금하다. 조선시대 성교육과 성생활에 관한 논문 한 편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근엄하고 진지한 학자가 다룰 주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넘겨짚는 수밖에 없다. 아마 조선시대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성지식을 습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자연스럽게’라는 부분이 문제다. 자연스러운 성교육이라는 것은 알음알음으로 주워듣거나 훔쳐보면서 배우는 게 고작이다. 정확하고 체계적인 교육이 될 리 없다. 부정확하고 왜곡된 정보가 난무했을 것이다. 노비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삼은 성폭력과 성매매도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교육이라는 것이 과연 있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교육 목표만큼은 확실하다. 조선시대 성교육은 추상적 표현과 억압적 규범으로 점철된 ‘성교 예방 교육’이었다. 이념을 지키고 욕망을 제거한다는 성리학적 명제 ‘존천리(存天理) 거인욕(去人慾)’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마저 부정했다.

 

조선시대 교육도서에 언급된 남녀관계라고는 ‘부부유별’이 전부다. 성적 욕구가 생길 나이가 되면 결혼하던 시절이니, 부부관계에 입각해서 성교육을 하는 것도 나쁠 것 없다. 문제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성을 금기시했다는 점이다. <동몽선습>과 <격몽요결>은 부부 사이라도 가급적 서로를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소학>은 한술 더 뜬다. 모든 남녀의 접촉을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은 <소학>의 모토다. 남녀를 떼어놓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무식한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하다.

 

원래 조선 사회는 부부 이외의 남녀관계를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첩과 기생은 무엇인가.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억압된 성적 욕구가 만들어낸 피해자다. 성적 욕구를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조선시대 성교육은 앞에서는 성을 금기시하면서도 뒤로는 성에 탐닉하는 이중적인 성문화를 고착화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성관념이 이중적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고등학교 성교육 담당교사가 바나나에 콘돔 씌우는 실습을 하려다가 학부모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여전히 성교육을 성교 예방 교육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바나나에 콘돔을 씌우는 행위가 혐오스럽게 느껴진다면, 조선시대의 도덕관념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학부모의 의견은 귀담아들어야겠지만 터무니없는 요구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막을 수 있을 때까지 막아보겠다는 식의 성교육은 조선시대와 다를 것이 없다. 다른 과목들은 전부 바뀌었는데, 어째서 성교육만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가. 아마 우리 어른들의 성관념이 조선시대처럼 여전히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우리 아이들은 학생이기 전에 육체와 욕망을 지닌 인간이다. 이 점을 외면하면 정확하고 올바른 성교육은 불가능하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 연구원 연구교수 confuc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