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조선 금속활자의 실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이 출토되었다. 이미 그 존재는 알려져 있었지만, 실물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발견이다. 특히 이 중에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앞서는 갑인자(1434)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선 고려시대부터 금속활자를 사용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떠오른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지식의 확산을 촉진하여 사회 변혁에 기여했는데, 조선 금속활자는 어째서 그러지 못했는가.

 

금속활자의 발명이 세계사적 사건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서적의 다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해서다. 그러나 조선 금속활자는 그렇지 못했다. 우선 내구도가 문제다. 조선 금속활자는 10~20년마다 새로 만들어졌다. 활자의 수명이 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00년 넘게 사용한 금속활자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두 번째 문제는 인쇄량이다. 조선 최초의 활자 계미자(1403)의 하루 인쇄량은 기껏해야 몇 장이었다. 그러다가 경자자(1420)는 20여장, 갑인자는 40여장으로 늘어났다. 혁신적인 발전이지만, 문제는 이 혁신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18세기까지 조선 금속활자의 하루 인쇄량은 40장을 넘지 못했다. 갑인자 개발 이후 400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기술적 진보가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구텐베르크 인쇄기는 개량을 거듭하면서 1분에 10장까지 인쇄가 가능했다고 한다. 게다가 구텐베르크 이후 유럽 각지에서는 인쇄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조선의 활자인쇄는 교서관 한 곳에서만 가능했다. 국가가 출판을 장악한 마당에 혁신은 가당치도 않다.

 

세 번째 문제는 조판이다. 5만자 안팎의 한자를 조판하는 작업은 대소문자 도합 52자의 알파벳을 조판하는 작업과 차원이 다르다. 숙련된 장인조차 하루 조판량이 몇 장에 불과했다. 이래서야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 한글 활자는 어떨까.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상하좌우로 결합해 하나의 글자를 이룬다. 하지만 자음과 모음 활자를 조합해 글자를 구현하는 방식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결국 조합 가능한 모든 글자의 활자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세종시대 한글로 조합 가능한 글자수는 16만자가 넘는다. 활자인쇄의 편의성에 한해 말하자면 한글은 한자보다 나을 게 없다. 한글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문자일지는 몰라도 활자인쇄에 적합한 문자는 아니다.

 

애당초 조선 금속활자의 용도는 서구 금속활자와 달랐다. 조선 금속활자는 대량생산용이 아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용이다. 중앙정부에서 활자로 인쇄한 책을 각 지방 관청으로 내려보내 목판으로 제작, 배포하는 것이 조선의 기본적인 출판 방식이었다. 조선 금속활자는 일종의 샘플 제작용이었던 셈이다. 조선 사대부들도 활자인쇄보다 목판인쇄를 선호했다. 판목이 남는 목판인쇄야말로 영구히 후세에 전하는 방법이라 믿었다. 활자인쇄는 목판인쇄를 위한 중간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시대 서적 보급은 목판인쇄를 통해 이루어졌다. 목판인쇄는 대량생산에 적합하다. 중국과 일본이 금속활자를 사용하지 않고도 상업출판을 발달시킨 이유다. 다만 목판인쇄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수요가 많아야 수지가 맞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조선의 독서인구는 중국과 일본에 현저히 미치지 못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이 나라에는 18세기까지 변변한 서점 하나 없었다. 경직된 이념, 낙후한 경제, 이유는 여러 가지다. 활자인쇄는 이처럼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건 한민족의 두뇌가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리가 무언가 남보다 앞섰다고 ‘국뽕’에 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남보다 뒤처졌다고 비하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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