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청일전쟁

경향신문 2021. 1. 21. 09:47

1896년 5월 모스크바에서는 세기의 외교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주요 인물들이 속속 도착했다. 청일전쟁 후 삼국간섭으로 긴장에 휩싸여 있던 동아시아 각국도 거물들을 파견했다. 청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내정과 외교를 주물러왔던 이홍장이 왔다. 청일전쟁에서 그의 북양함대가 참패하는 바람에 세력은 많이 꺾였지만 국제적으로도 ‘동양의 비스마르크’로 알려진 거물이었다. 일본은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보냈다. 메이지 정부의 원로로 총리를 두 번 지내며 이토 히로부미와 당시 일본 정계를 양분하던 최고 실력자다.

 

조선은 민영환을 대표로 파견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항거해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 그 사람이다. 윤치호도 대표단에 있었다. 민씨 세력의 인물이긴 했으나 정치적 중량감은 앞의 두 사람에 비해 떨어졌다. 나이도 35세로 이홍장(73세), 야마가타(58세)에 비하면 한참 어렸다. 청의 사절단은 수백명 규모였지만 조선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국력도 국력이지만 사절단의 존재감도 현격한 격차가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벌어진 치열한 외교현장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청의 사절단을 우대했다. 황제는 이홍장을 만나줬다. 황제 니콜라이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고명한 이홍장을 만났다. 수행원을 대거 이끌고 왔다. 당당한 풍채의 노인이다”(와다 하루키 <러일전쟁 1>). 청은 러시아에 동맹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청은 여전히 대국이었고 만주에는 러시아 이권이 걸린 철도가 있었다. 둘은 비밀조약을 맺었다. 일본의 야마가타는 조선 문제를 줄기차게 들이댔다. 그는 대동강 부근을 경계로 한반도 남북을 일본과 러시아가 각각 관리하자고 제안했다. 아관파천으로 조선국왕 고종을 확보하고 있던 러시아는 밑지는 장사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머나먼 곳에서 제국주의자들 간에 조선 분할이 멋대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대동강은 무슨 죈가. 기막힌 일이다.

 

민영환은 뭐 하고 있었나. 나름대로 분투했다. 조선이 사절단을 파견한 것 자체가 외교적 성과다. 민영환은 조선·러시아 동맹 체결을 요청했다. 원래 동맹은 국력이 비슷한 나라끼리 맺는 것이 보통이다. 괜히 약소국이랑 맺었다가 분쟁이 생기면 독박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1902년 영·일 동맹과 1953년 한·미 동맹은 그런 면에서 이례적인 조약이다. 러시아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민영환은 군대 파견과 차관 제공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러시아는 미적거렸다. 결국 10여명의 러시아 장교와 병사를 파견해 조선군대를 양성해준다는 약속에 그쳤다. 국왕이 러시아공사관에 뛰어든 상태에서 협상의 지렛대가 있을 리 없었다. 조선에 파견된 러시아 장교 푸차타는 6000명의 조선 군대와 그를 뒷받침할 사관학교 설립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군사교관과 차관이 필요했다. 고종도 전적으로 동의했고, 서울 주재 러시아공사 베베르도 본국 정부를 설득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이마저 응하지 않았다. 고종의 필사적인 친러정책은 수포로 돌아갔다.

 

새해 벽두부터 신나는 얘기가 아니라서 죄송하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불과 120여년 전 일이다. 한국은 참 얄궂은 곳에 터를 잡고 있다. 유사 이래 유목세력과 중국세력이 대립하는 동안에도, 19세기 말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격돌하는 와중에도 그 최전선이었다. 그러니 외세의 영향이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난히 주체나 자주를 강조하는 것도 그에 대한 반발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도 중요하지만 세계 대세에 대한 예민한 인식과 그에 올라탄 화려한 외교술이야말로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 한국에서 가장 탁월한 인재들은 외교부나 국정원에 가야 한다고 믿어왔다. 물론 외교를 그 천재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좌지우지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농단, 농단 하지만 ‘외교농단’만큼 무서운 건 없다.

 

박훈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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