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코로나19와 정체성

경향신문 2020. 4. 16. 14:18

두 달 넘게 코로나19가 개인의 일상과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 상황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문제의 범위와 영향은 역사적 차원에서 ‘2차 세계대전’, ‘대공황’에 비교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질병 차원을 넘어 사회적, 국제적 차원에서 코로나19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대비되는 대처 방식을 통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세계적으로 드문 성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껏 ‘선진국’으로 알고 있던 나라들의 상황 대처 결과와 명료히 대비된다. 코로나19의 피해는 한국 안에서도 사회의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주었다.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코로나19는 세계적 차원에서도 개별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소위 ‘선진국’에 대해 가졌던 기존 상식과 새로 드러난 그들 현실 사이의 차이를 눈으로 보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이제까지 지녀왔던 국가 정체성에 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그의 경제적 사정이 일치하지 않는 일은 흔하다. 상식으로는 부유한 사람이 정치적으로 좀 더 보수적 성향을 띠고, 사회의 경제적 약자들이 진보적 성향을 띨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소위 말하는 ‘강남좌파’도 그 예이고, 선거 때마다 극명하게 나타나는 정치적 ‘지역주의’도 그 예이다. 선거에서 개인의 투표행위는 개인의 경제적 형편보다는 오히려 그가 가진 여러 정체성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체성은 역사학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역사’라는 말은 2중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실제로 있었던 사실에 대한 ‘인식’ 혹은 그 인식의 ‘서술’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역사는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 자체’는 아니다.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직접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수많은 과거의 사실들 중 역사가에 의해 선택된 사실들과 그에 대한 해석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선택한 사실들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역사가는 어떤 기준으로 과거의 사실들을 선택하고 그것에 해석을 더하는가? 물론 다수의 역사가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선택하려 하고 공정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 선택과 해석이 과거의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역사가의 선택과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 개인으로서 역사가가 갖는 다양한 차원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역사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 그리고 사회 내의 자신의 위치에 크게 영향받는다.


역사 연구가 언제나 똑같은 틀에 더 상세한 역사적 사실들을 채워 넣거나 혹은 다른 내용의 역사적 사실을 채워 넣는 행위만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역사책이 똑같은 형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역사상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시대마다 다른 세상에서 살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대개 자기가 경험한 시대를 기준으로 과거를 해석했다. 19세기에 발전하던 유럽의 산업주의와 제국주의는 그런 기준으로 세계를 해석했다. 역사는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고 서구는 동양보다 우월하다고 서술했다. 당시 서구의 무력에 압도된 한국, 중국, 일본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일본은 심지어 자신들을 아시아에서 유럽인에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왕조가 있었던 한국과 중국은 왕조와 그것의 교체를 중심으로 역사상을 구성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역사인식으로는 인도나 아메리카의 역사를 쓸 수 없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던 요소에 의해 크게 영향받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전염병을 막는 것이 점점 더, 혹은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을 때 역사서술은 어떤 모습이 될까? 코로나19는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정철 |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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