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태정태세문단세…정순(익)헌철고순

경향신문 2019. 6. 26. 11:06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어렸을 적 달달 외웠듯 조선의 임금은 총 27명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국왕’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니,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사진은 왕세자 책봉옥인)이다. 세자는 “귀티가 나고 용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순조실록>)고 한다. 효명세자의 저술이 역대 임금의 시문을 모은 <열성어제>에 포함됐고, 조선을 실제로 3년3개월간(1827년 2월~1830년 5월) ‘대리청정’했으니 ‘국왕대우’를 받아 마땅하다. 효명세자의 치세에 잠깐이나마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주춤했고, 260만명의 기민을 구휼했으며, 신진관료를 대거 선발하고, 상언과 격쟁제도를 활성화했다. 하지만 세자의 으뜸 업적은 따로 있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기에 소개된 정재(呈才·궁중연회에서 공연된 춤과 노래) 40종목 가운데 20종의 가사를 창작 또는 재창작한 것이다. “미인 달빛 아래 걸어나오니(빙정月下步) 비단 옷소매 춤이 바람에 하늘거리네(羅袖舞風輕). 꽃 앞의 자태 가장 아끼나니(最愛花前態) 이 청춘 스스로 임의 정에 맡기네(靑春自任情).”


1828년(순조 28년) 초연된 1인 독무극 ‘춘앵전’의 가사인데, 효명세자가 썼다. 요즘 자주 쓰이는 ‘최애(最愛)’의 표현이 등장한다. 효명세자는 기존 작품에 가사와 곡조, 춤의 구성 등을 완전히 바꾼 전혀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노가바’(노래 가사 바꾸기)와 편곡의 차원을 넘어선 재창작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고구려 춤을 보고 읊은 시를 노래 가사로 차용해서 창작한 ‘고구려무’와 신라 화랑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사선무’ 등도 만들었다. 효명세자의 창작을 도운 이는 세자의 명에 따라 악단을 이끈 김창하였다. <순조실록>은 “대년악생(장악원 연습생) 72명에게 봉급을 주어 춤연습을 시켰다”(1827년 3월11일)고 기록했다. 요즘의 연습생 제도 같다. 효명세자는 창작·안무·연출 등을 지휘한 대표 프로듀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효명세자는 22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효명세자 이후의 조선은 8살에 즉위한 헌종(재위 1834~1849)과 군주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강화도령 철종(1849~1863)으로 이어져 급속히 몰락한다. 효명세자의 부고에 백성들이 울부짖었다. “하늘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구나”라고…. 만약 효명세자가 좀 오래도록 임금자리에 있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렴 헌-철-고-순의 전철을 밟지는 않았겠지.


<이기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