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편집국에서]비운의 문화재들, 제자리 찾아줄 때다

경향신문 2019. 7. 5. 11:13

빼어난 조형미로 백제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는 국립부여박물관의 자랑이다. 이 향로를 보기 위해 부여를, 부여박물관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관람객이 늘자 박물관은 이 향로만을 위한 전시공간을 특별히 단장하기도 했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부여의 문화적 자긍심을 상징한다.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고마운 문화재다.


세계적 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이 즐겨찾는 상징적 소장품이 있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영국박물관의 ‘로제타 스톤’이나 ‘파르테논 마블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진품을 보기 위해 해마다 수백만명이 몰려든다. 문화재만이 아니다. 이름난 현대미술품을 소장한 미술관, 아름다운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쇠락한 중소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미술관으로 거듭나고, 일본의 버려진 섬이던 나오시마가 예술의 섬으로 재탄생한 것은 도시 재생, 지역 활성화 등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문화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최근 고려시대 승탑(부도)의 백미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101호)이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정됐다. 승탑의 보존처리 작업이 끝나면 강원 원주시 법천사터에 자리잡는 것이다. 이르면 2021년으로, 무려 110년 만에 제자리를 찾는다. 지광국사 해린의 승탑인 지광국사탑은 1070~1085년 사이 ‘지광국사탑비’(국보 59호)와 함께 법천사에 세워졌다. 하지만 형태, 조각이 워낙 아름답다보니 1911년 일본인에 의해 통째로 뜯겨 서울로, 일본으로 옮겨졌다. 경복궁 자선당, 경천사지 십층석탑 등과 같이 일제의 무지막지한 문화재 약탈의 희생물이었다. 승탑은 이후 돌아왔지만 곳곳을 전전하다 경복궁 뜰에 서 있었다. 이제 지광국사탑이 돌아가 홀로 서 있는 지광국사탑비와 만나면 법천사터는 더 감동적인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지광국사탑의 귀향을 주목하는 이유가 애틋한 사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승탑처럼 제자리를 찾을 때 더 빛날 문화재가 아직도 많아서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같은 격동의 시기에 문화재들은 국내외로 흩어졌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통계를 보면, 해외 유출 문화재는 현재 21개국 18만2000여점이다. 국내에서 타향살이하는 문화재도 많지만 공식 집계조차 없다.


그렇다면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는 어디에 있을까. 서울이다. 인구나 자본만이 서울로 집중된 것이 아니다. 문화재들도 일제에 의해, 권력·재력가들에 의해, 보존·연구 등을 이유로 서울로 옮겨졌다. 대표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전국 곳곳에 있던 석조문화재들이 한데 모여 있다. 각 지역에서 해외 문화재 환수처럼 고향 문화재 환수운동이 벌어지는 이유다. 지광국사탑도 원주에서 환수운동을 벌인 지 10년이 넘었다. 지금도 경남 김해가 ‘도기기마인물형뿔잔’을, 경북 경주는 ‘황남대총 북분 금관’, 청와대에 있는 석조불상 등의 반환을 촉구하고 있다.


지광국사탑의 귀향을 계기로 이제 문화재 제자리 찾아주기가 본격 검토돼야 할 때다. 문화체육관광부·문화재청과 해당 지자체는 체계적인 반환·환수정책을 마련, 추진해야 한다. 중앙박물관이 선제적으로 지방국립박물관들로 소장품 이관을 추진 중이지만 이관 장소나 대상 문화재의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 보다 나은 시설, 보다 많은 관람객이 있는 서울에 문화재가 소장되는 장점도 많지만, 문화재 제자리 찾아주기는 문화재 보존·활용의 기본 원칙이다. 원형 유지와 더불어 문화재의 역사성, 진정성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유네스코 협약이나 문화재보호법, 학술적 이론까지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는 시대정신과도 부합한다. 지방분권시대에 발맞추는 일이자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지역의 문화·경제활성화와 주민들의 문화적 자긍심과도 밀접하다. 중앙박물관이 여러 명분으로 53년간이나 소장하던 ‘안동 하회탈·병산탈’(국보 121호)을 안동 지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돌려준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앙의 관계 당국은 그동안 문화재 약탈국들이 반환을 거부하며 내세우는 문화재 ‘국제주의’ 논리를 차용해왔지만 스스로 벗어날 때가 됐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더 빛나고 역사문화적 향기 또한 더 진하다.


다만 문화재 제자리 찾아주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제자리에서의 보존과 연구·전시가 가능해야 한다. 훼손된다면 제자리로 가지 않은 것만 못하다. 진정 고향 문화재를 다시 품에 안자면, 제자리를 찾아주고자 한다면 지자체도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야 한다. 제자리도 제자리 나름이기 때문이다.


<도재기 문화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