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호그와트 역사수업 유감

경향신문 2022. 4. 8. 10:34

해리 포터가 다니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는 우리 같은 ‘머글’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흥미로운 수업이 가득하다. 비명을 질러대는 맨드레이크 같은 식물을 다루는 약초학 수업, 탁자를 돼지로 바꾸는 법을 가르치는 변신술 수업, 행운의 묘약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약 수업까지. 이런 특이한 수업 속에 유일하게 머글도 수강할 만한 것이 있으니 바로 빈스 교수의 마법의 역사 수업이다. 역사를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참으로 뿌듯하다. 이것 보라! 마법의 세계에서도 역사학은 유용한 학문이다!

아쉽게도 이런 뿌듯함은 곧 쭈그러들고 만다. 마법의 역사 수업은 유일하게 유령이 가르치는 과목이라는 점 외에는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교수가 유령이라 칠판을 스르륵 통과해서 들어온다는 것이 그나마 이 수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고, 나머지 시간엔 모든 학생이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교수님도 학생들을 깨워 수업하는 데 큰 의욕이 없는 것 같다. 중얼중얼하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고블린의 반란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사건도 세상 재미없게 설명하니, 학생들은 가끔씩 이름과 날짜를 적는 것 말고는 늘 졸다 자다 하는 수준이다. 아, 슬프게도 역사는 마법 세계에서도 그냥 이런 과목인가 싶다.

그래도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의 역사 과목을 묘사한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먼저 저자가 역사 과목을 묘사한 방식을 보자. 마법의 역사는 늙은 유령 선생님이 정해진 교과서를 중얼중얼 읽는 과목이다. 그 지루한 수업에서 학생들이 그나마 중점을 두고 필기하는 지식은 ‘이름’과 ‘날짜’뿐이다. 항상 선진국의 교육은 뭐가 달라도 다르고 역사 교육도 토론과 비판 능력을 키워 시민 교육에 이바지한다는 등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 동네 사람들은 역사 과목에 대해 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적어도 조앤 롤링이 배운 기억으로는 그 동네 역사 과목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그저 암기 과목, 그것도 날짜나 이름만 지겹게 외우는 과목이었나 보다.

마법의 역사 과목은 그래도 머글과는 다른 ‘마법사와 마녀’의 관점을 전달해준다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그 관점에만 머물 때의 한계도 분명하다. 14세기에 마녀 화형식이 너무 재밌어서 마흔일곱 번이나 변신해가며 화형을 자청한 웬델린의 사례는 머글의 어리석음이나 마법사의 능력이라는 차원에서 다뤄질 주제가 아니다. 그 소수의 진짜 마녀와 마법사는 화형식을 즐겼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핑계로 우매한 머글은 수많은 가난하고 힘없는 머글 여성을 마녀로 몰아 죽였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관점에서는 그저 웃기는 해프닝 같아 보일지 몰라도 머글에게는 엄청난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빈스 교수가 내준 방학 숙제, ‘14세기의 마녀 화형은 완전히 무의미했다’는 주제는 낡디낡았다.

역사는 ‘유령도 가르칠 수 있는(더 잘 가르칠 것 같은)’ 과목이 아니다. 역사학은 꽤나 역동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모든 역사학과 지망생이 면접에서 외우는 이 구태의연한 말의 진정한 의미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바뀌지 않더라도 그것을 보는 현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바뀌면서, 관점이 달라지고 사실의 중요성이 변화한다. 질문이 바뀌면 필요한 ‘사실’도, 알아야 하는 ‘진실’도 바뀌는 법이다. 이미 알려진 과거의 사실들이 뻔할 때에도 역사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헤르미온느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가? 집요정의 노예 노동이 반영된 새로운 호그와트 역사가 쓰여야 한다고. 이렇게 과거는 계속 다시 쓰이기 마련이거늘, 어떻게 유령이 역사를 더 잘 가르칠 수 있겠는가. 역사학은 교과서 외우고 참고서에 문제집 몇 권 풀었다고 잘한다고 으스댈 수 있는 과목이 아니다. 하긴 그 어떤 학문이 그렇단 말인가.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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